주인공 이장정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 무대 위엔 붉은 꽃잎이 휘날렸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시적인 장면이라거나 비장한 최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니노 로타의 '대부' 주제가가 관객의 가슴을 파고 드는 대목은 가슴 뭉클한 데가 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바로 한국의 남성성, 수컷다움, 그리고 남자다움이라는 강박관념을 장례지내는 순간이며 니노 로타의 주제가는 마초 근성에 보내는 각성과 위로의 노래다.'남자충동'이 12일부터 7년만에 대학로 무대에 다시 올랐다. 대학로의 차세대 주자로 첫 손에 꼽히는 조광화의 연출 데뷔작이다. 관객동원은 물론이고 각종 연극상 13개 부문을 휩쓸며 개가를 불렀던 하나의 신화다. 정진각(아버지 이씨), 황정민(어머니 박씨)을 비롯해 안석환(이장정), 이유정(이장정의 동생 달래) 등 주·조연 모두가 연기상을 탔을 정도로 반응은 대단했다.
영화 '친구'로 점화가 된 조폭영화의 원조도 따지고 보면 연극 '남자충동'이다. 한국사회가 강요하는 남성성과 의리에 대한 통렬한 풍자는 조폭영화가 보여준 상상력을 일찌감치 미리 보여준 바 있다. 걸쭉한 목포 사투리, 흥미로운 인물 설정, 긴밀하게 주고 받는 앙상블, 짜임새 있는 대본은 단연 돋보인다.
'남자충동'의 열쇠는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다. 막이 열리면 낡은 일본식 가옥이 보이고 이장정은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대부' 마이클의 사진 앞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입에 늘 붙는 말은 '사내가 듸야각고' '남자헌티 제일 중요헌 게 가족'이다. 화투 쳐서 집을 잡힌 아버지부터 집에서 마음이 떠난 어머니, 계집아이 같은 큰 남자동생 유정(이남희), 머리가 이상한 막내 여동생 달래까지 건사하겠다는 이장정의 각오는 장남으로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투로 집안 말아먹는' 아버지의 손목을 자르고, 깡패 보스로 성공하길 꿈꾸면서 그의 삶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알 파치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 가기에 이장정의 실패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아버지와 장남이 서로를 외면한 채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 이장정이 친구에게 절을 할 것을 요구하는 장면, 달래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장면 등 웃음과 열광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적지 않다. 보통 이상을 성취하기는 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초연 때 무대미술상을 받은 무대는 소극장에서 중극장 규모의 동숭홀로 옮기면서 헐거워 보인다. 유정과 여장남자인 단단이의 카페 장면과 이장정과 그의 부하가 나오는 장면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지 않는다. 옛날 교복을 입은 이장정의 부하들이 '강간의 추억'을 자랑하는 장면은 시대착오적이다. "전설이 된 초연의 성공 탓에 관객 기대치가 높아져 무섭다"는 조광화의 말처럼 성공한 연극이 주는 강박증은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A팀과 B팀(조혜련, 최광일 등 출연)의 연기 편차도 궁금한 대목이다. 공연은 4월18일까지 동숭홀. (02)501―7888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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