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窓]身言書判으로 본 대통령의 "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窓]身言書判으로 본 대통령의 "말"

입력
2004.03.18 00:00
0 0

신언서판(身言書判)은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네 가지 잣대이다. 글자 그대로 용모, 언변, 문필 그리고 판단력을 의미한다. 옛날 기준이지만 오늘날에도 사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이다.그렇다면 신언서판의 현대적인 해석은 무엇일까. 먼저 신(身)은 단순히 '꽃미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명하고 영특해 보임은 물론 인간적인 위엄이 배어나는 단정한 용모를 의미한다. 언(言)은 언사의 변정(辯正)함과 적절함을 뜻한다. 서(書)는 문필력의 의미를 넘어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판(判)은 어떤 일을 할 때 비전을 가지고 결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언서판은 오히려 현대에 인물을 검증하는 데 더욱 유용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영상 미디어 시대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과 이미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과 판단력이 아닌가 한다.

최근 미국에서 정치지도자의 말과 판단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이 그것인데, 초반 선두 주자는 의사 출신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였다. 언론을 비롯한 대다수 미국인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그의 승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세 과정에서 승리에 너무 집착해서인지 네거티브 선거 전술을 펴면서 너무도 쉽게 흥분하여 거친 말과 몸짓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결국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해 스스로 낙마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은 어려운 국사를 판단함에 있어 이성적이고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는 조건에 딘 후보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그 힘든 싸움을 이겨냈는데도 국민 전체에게 완전한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나, 국회로부터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을 받게 된 비극의 근본 원인은 그의 미숙한 말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가 대통령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던진 정치 전략 차원의 승부수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우리 대통령의 말과 몸짓은 너무나 거칠고 감정적이며 즉흥적이었다.

이번 탄핵 사태가 대통령에게 말은 글이고 판단이며 인격과 품위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이 곧 지도자의 자격을 검증하는 신언서판의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태 동 서강대 명예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