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30)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를 배우고 왔다고 했다. 미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을 마치고 지난 해 가을 귀국, 최근 4집을 내 놓은 김동률은 그동안 원하는 것을 순조롭게 이뤄 온 편이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1993년 서동욱과 함께 '전람회'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대학가요제에서 '꿈속에서'로 대상을 타면서 "앨범 하나 내 보고 싶다"는 10대 시절 소원은 생각보다 쉽게 이뤄졌다.1994년 1집 '기억의 습작'에서 시작해, 2집 '고해소에서', 이적과 함께 한 '카니발', 서동욱이 회사원의 길을 택한 이후에는 홀로 솔로 1, 2, 3집을 발표하면서 그는 꽤 괜찮은 젊은 음악가로 인정 받아 왔다. '하오'체 가사로 특징 지어지는 고전적인 감성과 바이브레이션이 섞인 굵은 그의 목소리는 고급 취향의 가요팬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이 천재들이 공부하는 동안 나는 뭐 했나…. 그냥 내 타고난 감성에 의지해 곡을 쓰고 노래하며. 정작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음악을 해 나갈지 걱정만 했던 거죠." 쓴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유학까지 다녀 와서 (그의 표현대로) "지난 번보다 후지다"는 소리 안 들으려 수 많은 근심 끝에 새 노래를 세상에 내 놓았다 했다.
새 음반은 사람들이 김동률에게서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낸 지극히 '김동률적' 분위기다. "새로운 시도는 오히려 쉬운 거 아닌가요?" 그는 반문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김동률의 색깔요…. 어차피 내게 기대하는 건 발라드고 내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 그건 오히려 내 재산이라 생각해요."
이번 노래는 비슷한 듯하지만 귀가 예민한 이라면 예전과 달라진 유려한 편곡을 맨 먼저 감지할 것이다. 거의 전 트랙에 걸쳐 54인조 관현악 연주가 곡을 뒷받침하고 있다. 타이틀곡은 멜로디가 귀에 꽂혀 오는 대중적인 곡 '이제서야'지만 김동률 분위기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은 오히려 '잔향'이다. 클래식컬한 사운드와 꼬박 두 달이나 매달리며 신경 썼다는 오케스트레이션의 아름다움을 가장 진하게 맛 볼 수 있는 곡이다. 늘 특유의 세상에 무관심한 표정으로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는 윤상에게 칭찬을 들은 최초의 곡이기도 하다. 마치 10년 동안 물만 긷다 스승으로부터 "이제 칼을 잡아라"고 허락 받은 무술 수련생처럼 기뻤다 한다.
그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듣는 사람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나 좋아서 하는 음악이라 생각했다."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아도 귀찮을 만큼 성공이 따르는 천재의 나태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제 좀 달라졌다. "건방진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10년 음악을 하다 보니 좀 달라지더라.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음반을 내 놓은 지금 주변 사람들은 "걱정 끝에 음반 내 놓았으니 이제 방송할 걱정 하겠네"하며 놀린다. 근심 많고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타고난 A형 모범생인 그를 아는 이들의 반응이다. 이적은 "네가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이 너를 잡아먹겠다. 음악을 즐겨라"고 말한다. 그 타고난 섬세함에 그는 쉬 우울해지고 때로는 대범한 B형의 성격을 한없이 부러워 한다. 하지만 그 예민함 덕에 그의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 깊숙한 감성까지 헤집어 놓을 정도로 섬세하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하겠다고 아버지께 말했을 때 아버지는 "네가 공부하다 힘들 때 음악이 너를 위로해 주는데 그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면 지칠 때는 무엇으로 위로 받겠니" 물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냥 견디는 거죠"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는 음악 하는 것을 꽤나 즐기는 듯 했다. "타고난 싱어는 아닌 것 같지만요. 다른 거 하고 싶은 거요? 글쎄요. 하루키처럼 여행하고 글쓰는 거요?"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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