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함박눈이 내리던 1970년 3월17일 밤 11시께 서울 강변도로에 세워진 코로나 승용차에서 초록색 원피스에 스카프를 두른 미모의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름이 정인숙으로 밝혀진 이 26세의 여성은 그 뒤 오래도록 '정 여인'으로 거론되며 한국 최고 권력층의 분방한 성문화와 음산한 '사고처리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고 신음하는 운전사를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긴 뒤 수사에 들어갔다.경찰 발표에 따르면 정인숙을 살해한 사람은 운전사인 그녀의 오빠 정종욱이었다. 여동생의 문란한 사생활에 격분한 정종욱이 그녀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할 참이었다는 것이다. 수사의 진척에 따라, 정인숙이 별다른 직업 없이 일류 호텔과 카바레를 드나들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세 살 먹은 아이를 키우고 있던 그녀는 또 자신이 공화당 정권의 고관들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여러 자리에서 드러낸 것으로 밝혀졌다. 미스터리물의 온갖 요소를 갖춘 이 사건은 정인숙의 슈트케이스에서 당시 권력 핵심 26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나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회에서까지 쟁점화되었다. 대통령 박정희와 국무총리 정일권을 비롯해 수많은 권력자들이 정인숙의 애인으로 거론되었다.
이 사건의 전모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정인숙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일까에 대해 비속하다면 비속하달 호기심이 오래도록 잦아들지 않았지만, 이것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다수의 호사가들은 박정희를 거론했다. 그러나 본인은 뒷날 자신의 아버지로 정일권을 지목했다. 미국에서 성장한 그는 지난 1991년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일권은 1994년에 사거했고, 정인숙의 아들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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