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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 시인, 인터뷰 출간/18人의 문인들과 진솔한 "소주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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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 시인, 인터뷰 출간/18人의 문인들과 진솔한 "소주한잔"

입력
200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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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즐거우려면 장석남 시인을 만나는 것이 좋고, 귀가 즐거우려면 유하 시인을 만나는 것이 좋다. 입이 즐거우려면 소설가 박상륭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 박상륭 선생처럼 먹을 것을 가지가지 준비해 놓은 사람은 없었다."문인 한 사람 한 사람과 얼굴을 맞대 얘기를 나누고 소줏잔을 기울인 시인 한명희(39)씨의 감상이다.

그가 문인 18명과의 인터뷰를 엮어 출간한 '삶은 조심스럽게, 문학은 거침없이'(천년의시작 발행)에서 시인, 소설가들의 진솔하고 내밀한 얼굴을 그려내 보였다.

원고지 12만 장 분량의 방대한 전집을 낸 고은 시인은 "쉽게 나오거나 어렵게 나오거나 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작품에 다 애정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도 들리는 말이다. "자고 나면 쓸 게 이런 데도 붙어 있고 이런데도 막 붙어 있어"라면서 팔의 여기저기를 만지는 그에게서 한씨는 '시를 향한 광기'를 보았다고 말한다. 김지하 시인과의 만남 중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환갑을 지났어"라는 말은 잊을 수 없다. 그 말에서 한씨는 멈출 줄 모르는 의욕과 새로운 것을 향한 끝없는 도전을 느꼈다.

'조금 살찐 니콜라스 케이지' 유하 시인을 만난 날은 깊은 고민을 나누되 유쾌한 대화로 즐거웠다. 영화감독으로 활약하는 그는 "글 쓰는 게 싫어서 영화를 하게 됐다"면서도 시나리오 쓰기가 시보다, 산문보다 어렵다고 털어놨다. "문학은 당일치기가 안된다,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문학을 모른다는 것이다" 라며 유하는 대화 내내 문학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장석남 시인과는 곱창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예술적으로는 보수적이에요"라고 시론을 밝히던 젊은 시인과의 만남은 즐거웠다. "시의 보수성은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예요. 시를 지킨다는 것은 자유를 지킨다는 거죠. 따라서 시는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던 멋진 얼굴은 기쁜 덤이었단다.

20년 만에 만난 고교 동창 나희덕 시인에게는 "언제 시를 써?"라고 말을 놓아 물었다. "설거지하면서도 쓰고, 아기 데리러 가면서도 쓰고…. 생활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를 썼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서적으로는 오는데, 논리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시, 시의 여백은 많은데 논리적으로 묶어내기는 부적당한 시…"라고, '마치 남의 시를 얘기하듯' 자기 시를 말하는 나씨는 자신의 시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시인이었다.

이렇게 입술을 열어 말하고 손을 내밀어 술잔을 잡는 문인들의 향취는 따뜻하고 소박했다고 한씨는 전했다.

가까이에서 본 그들은 뜨거운 문학의 열정을 품은 가슴과 보통 사람처럼 웃고 수줍어하는 얼굴을 함께 갖고 있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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