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디하네예…. 정치꾼들 하는 꼬라지 보이(꼴을 보니) 마 콱 우리당 찍어주고 치아뿔낍니더. 대통령 갈아치우는 기 어디 알라(아기) 장난임껴." "그기 전부 다 지(자기) 탓인기라. 오죽하마 탄핵안이 통과됐겠노. 입을 제대로 간수 못했으이 당연하지를…."16일 오전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앞.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 나흘이나 지났는데도 민초들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말을 붙이기가 무섭게 한마디씩 거들었다. 서울로 출장간다는 회사원 김모(41·대구 달서구)씨는 "(야당이) 해도 너무한 거 아잉교. 경기도 안 좋아서 언제 (회사에서) 잘릴 지 모르는 판국이구만, 허구한 날 택도 아닌 거로 발목이나 잡고 앉았으이"라며 핏대를 세웠다. 질세라 맞은편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박철희(69·대구 동구)씨는 "그 정도도 못하만 그기 어디 야당이가. 속이 후련하데이"라며 맞받았다.
TK민심 한치앞 예측불능
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대구·경북. 그러나 이곳도 탄핵의 후폭풍에서 예외지대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당지지도가 똑같이 나타날 정도로 탄핵돌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치인들 대구만 오면 이곳에 제일 먼저 달려와 손잡고 볼비비면서 난리를 치더니만 이기 먼교." 전국3대 재래시장중 하나인 서문시장에서 만난 최태경(45·대구 수성구) 상가연합회장은 이어 목소리를 낮추며 "세상이 혼란할 때는 집권당을 찍는기 서민들한테 좋지예"라고 말했다. 대구 서구에서 목재업을 하는 봉진일(42)씨도 "노무현이를 뽑은뒤 잘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맡겨놓을 일이지, 뭐하는 짓인지…"라며 혀를 찼다.
젊은층과 야당 사이에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현정(23·여·경북대 영문4)씨는 "전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한나라당을 선호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선거만큼은 정당 보다는 인물을 보고 뽑겠다"고 했다.
'한나라당 자충수? 노통 꼼수?' 논란
그렇다고 대구 민심의 대세가 친여쪽으로 기운것일까. 그 판단은 아직 섣부르다. 대구의 정서를 대표해 온 보수층은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그 볼륨은 탄핵돌풍에 비해서는 미약해 보인다.
대구 달서구 박용수(72)씨는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노무현이가 또 꼼수를 부려 야당이 잘못 걸려들었다"며 "모 아니면 도식으로 나라를 히뜩 디비는(완전히 뒤집는) 이 인간을 어떻게 가만히 놔두겠노"라고 말했다. 북구 S병원의 김모(40) 과장은 "매스컴이 너무 야당만 몰아붙이고 있다"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쏘아붙였다.
"지금은 우리당쪽으로 분위기가 뜨고 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결국 투표소에 가면 도장은 한나라당에 찍을깁니더." 대구시청의 한 공무원(42)은 이렇게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이도 저도 싫다"는 시민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택시기사 박대구(59)씨는 "라디오에서 총선 뉴스 나오마 승객들이 꺼라캅니더"라고 전했다. 대구 남구에서 식당을 하는 이혜주(37·여)씨도 "묵고 살기도 바쁜디 선거는 무신(무슨)…"이라며 고개를 돌렸다.
경북, "후련하다'반응도 많아
"놈현(노무현)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그칸다고 탄핵까지 하나. 안 그래도 장사 안돼 죽겠는데 다 굶어 주거라 카는기가." "그런 밴댕이 소갈머리로 우예 대통령 해 무걸라 카노."
경북지역도 탄핵의 폭풍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그러나 농어촌이 많은 경북은 폭풍이 휩쓴 흔적이 대구와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탄핵까지 한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도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든, 새로 뽑든간에 지금보다야 더 잘 할기라예."구미공단에 근무하는 장인영(42)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주변에 물어보면 속이 후련하다는 의견도 많던데 방송을 보면 마치 나라가 뒤집히는 것처럼 난리법석"이라며 방송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여년째 포항 죽도시장에서 횟감 등을 취급해 왔다는 한모(55)씨는 "대통령이 기자회견 하면서 구구절절이 변명만 하지 말고 그냥 간단하게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더욱 열심히 잘 하겠다'는 식으로 했으면 그만일 것을"이라며 아쉬워 했다.
그러나 자영업을 하는 권모(38·구미시 도량동)씨는 "주변에서 탄핵을 잘했다는 말도 하지만 이번 사태가 몰고올 경제적 파장을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며 "국회의사당을 탱크로 밀어붙였으면 속이 후련하겠다"고 야당을 강하게 비난했다. 대학생인 정춘수(22·3학년)씨도 "탄핵소식을 접하고 몇몇 친구들은 대구에 가서라도 촛불집회에 참석하자는 말이 오갔다"며 "부패한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탄핵할 자격이나 있나"라고 흥분했다.
논쟁 가열속, 정치혐오 확산
김천과 경산 등 중소도시들에서는 탄핵이 정치 혐오증을 확산시키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다 싫다"는 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경산에서 건설업을 하는 김모(45)씨는 "이번 선거에도 투표여부를 고민했는데 탄핵후 아예 안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지난 16대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지역구를 완전 싹쓸이했던 대구와 경북.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었던 이곳의 표심도 탄핵안 가결후 전후좌우로 요동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한발 더 나가 대구에서 2∼3석, 경북에서 3∼4석 정도는 무난히 건질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되뇌이며 '거품론'으로 진화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결론은 뭘까. 이곳 역시 그 열쇠인 '태풍의 지속력'에 온 신경이 쏠리고 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포항·구미=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 대구·경북 언론 여론조사
'한나라당 17.2%, 열린우리당 17.2%, 민주노동당 3.9%, 민주당 1.1%, 자민련 0.4%, 지지정당 없다 59.2%.'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의 후폭풍은 여론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구 매일신문이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2일 밤 유니온리서치와 공동으로 17대 총선에서의 정당지지도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 지지도는 지난달 중순 30.4%에서 17.2%로 무려 13.2% 포인트나 급락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6월 38.4%에서 1월 32.2%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1월 6.7%, 2월 12.9%에서 한나라당과 같은 17.2%로 급상승했다. 응답자들은 "거주지역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열린우리당' 18.9%, '무소속' 17.6%, '한나라당' 14.5%의 순으로 응답,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경북의 정치풍향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15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TK의 한나라당 지지도는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대구·경북지역 주민들의 정당지지도는 열린우리당 31.6%, 한나라당 20.4%, 민주당 2.5%로 판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이는 지난달 24일의 여론조사에 비해 한나라당은 1.8% 포인트 떨어진 반면 우리당은 10.9% 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로 부동층이 대거 우리당으로 돌아선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12일 대구매일 조사에서 '지지정당 없다'는 응답은 59.2%에 달했으나 15일 MBC조사에서는 38.8%로 나타나는 등 선거가 임박하면서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유권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리아리서치 관계자는 "대구·경북지역에서도 대통령 탄핵가결을 계기로 열린우리당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정당지지도가 역전됐다"면서도 "총선때까지 남은 기간동안 TK 표심이 또 어떻게 변화할 지는 점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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