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사진)엔 미스터리가 하나(어디 하나뿐이겠냐 마는) 있다. 발랄해 보이지만 외로운 여자 혜진(엄정화). 자신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슈퍼맨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두식(김주혁)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그의 집에 찾아가 술 한 잔 하자고 청하는 단계에 이른다.둘 다 얼큰하게 취했고, 다음날 아침. 혜진이 잠을 깬 곳은 두식의 침대, 게다가 두식의 품 안이다. 과연 두식과 혜진은 그날 밤 잠만 같이 잤을까? 두식의 곧은 성품(?)으로 봐선 '안전한' 밤이었을 가능성 높지만, 혜진은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한 동안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그 좁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치과의사가 홍 반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마저 도는데, 그런 일 없다고 강하게 부정하는 혜진의 표정에서 행간을 읽어 보면 '혹시 정말일지도 몰라' 하는 의심이 살며시 느껴진다.
섹스를 적정량 이상으로 남용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만큼 경제적으로 섹스를 다루는 장르는 없다. 물론 남녀의 이야기인 만큼 성적 긴장을 늦추진 않지만, 로맨스 영화의 완성도는 베드 신의 횟수와 반비례한다고나 할까?
한참 욕망과 호기심으로 들끓을 나이인 20대 초반 청춘 남녀들의 이야기조차 그렇다. '엽기적인 그녀'의 남녀는, 이유야 어떻든 여관방까지 함께 가지만 남자는 여자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참 예쁘다'라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그러고서도 성추행범으로 몰리다니!).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남녀는 과외라는 허울 속에서 단 둘이 한 방에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내 아를 낳아도' 하는 상상 장면이 있을 뿐). 두 영화 모두, 현실 같았으면 충분히 대형사고가 날 법한 상황이지만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힘은 그들에게 엄청난 자제심을 부여한다. 낭만적인 사랑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참아야 한다는 법칙은, 그들의 허벅지에 바느질을 해대는 셈이다.
학생 티를 벗고 성적으로 좀더 자유로워진 싱글족들 또한, 이 장르 안으로 들어오면 섹스보다는 밀고당기는 관계에 중점을 둔다. '가문의 영광'의 첫 장면. 그들은 이미 '인 베드(in bed)' 상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필름 끊긴 시간은 그들을 계속 운명의 끈으로 묶어버리는데, 원래 캐릭터 설정이 그렇다고는 해도 살을 섞었을지도 모르는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는 지나치게 쿨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말 쿨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우연하게 동거하게 된 '미술관 옆 동물원'의 남녀. 잠깐만 있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눌러앉는 남자와, 틱틱거리면서도 상대방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여자의 공동 생활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가끔씩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사랑의 결정적 순간으로 '뽀뽀'나 '손 잡기'나 '포옹' 말고, 노골적이진 않더라도 은은한 멋이 있는 '베드 신'을 만나고 싶다. '싱글즈'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남녀가 친해지면 사고를 가장해서라도 섹스라는 유희를 즐길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거창하게 프리섹스주의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건 그저 '인지상정'의 차원일지도 모른다. 외로운 남녀들이여, 주변의 속 깊은 이성친구를 조금은 섹슈얼하게 바라보자. 그렇다고 불륜을 조장하자는 건 아니고.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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