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명이 본 영화에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의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수 십년 만에 극장을 찾게 만들었을까. 평론가 3명(김영진 조희문 심영섭), 제작자 3명(이춘연 심재명 이준익), 프로듀서 2명(김무령 이유진)으로부터 그 답을 찾아 봤다. 이들이 말하는 두 영화 흥행 비결의 5가지 공통점과 3가지 차이점―.5 가지 같은점
'반(反)국가주의'가 첫번째 흥행요소로 꼽혔다. 실미도 사태와 한국전쟁 이면에 도사린,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폭력과 만행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 반란. '실미도'에서 인찬(설경구)과 상필(정재영) 등 684부대원들은 국가의 부름에 의해 모였고, '김일성 목을 따기 위해' 모진 훈련을 견뎌냈으나, 결국 국가에 의해 자폭하고 말았다.
'태극기…'에서도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은 국가에 의해 강제 징집됐고, 국가가 강요한 이데올로기 논리에 의해 사람을 죽이다가 결국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이준익 씨네월드 영화사 대표는 이를 "과거 무리한 국가권력에 대한 반항심의 표출이자, 21세기 국가관의 변화를 드러낸 영화사적 사건"이라고 요약했다. "영화가 소위 대박이 나려면 사회적으로 잠재돼 있던 무의식을 건드려야 한다. 두 영화는 과도한 국가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반감을 의식화하는 데 성공했다."
평론가 김영진씨 역시 "국가권력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으로 '노(No)'라고 말한 영화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두번째는 실화의 힘이다. 그것도 언급조차 금기시돼 온. "두 영화 모두 실화에 대한 과감한 접근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김무령 싸이더스 프로듀서) "실미도 사건을 확연히 보여줬다."(이춘연 씨네2000 대표) "한국전쟁이라는 역사를 문화적으로 소비한 것은 최인호의 '광장' 이후 '태극기…'가 처음이다."(이준익)
스타 배우와 스타 감독이 만난 것도 결정적. 안성기 설경구('실미도')와 장동건 원빈('태극기…'). 여기에 이름만으로도 단번에 투자자를 모을 수 있는 두 스타 감독이 만났다. "역시 강우석, 역시 강제규 "(이준익)이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두 감독의 브랜드 파워와 신뢰도 높은 스타들의 캐스팅이야말로 1,000만명 돌파를 가능케 한 첫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 위상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과, '와이드 릴리즈'(대규모 동시개봉)라는 배급의 힘도 두 영화를 성공케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난해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가 두 대작 영화에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시네마서비스와 쇼박스라는 메이저 배급사의 목숨 건 배급과 마케팅은 다른 영화가 비애를 느낄 정도로 막강했다."(이유진 영화사 봄 프로듀서)
3가지 다른점
그럼에도 두 영화는 주인공 수만큼 다르다. '실미도'의 등장인물은 설경구 정재영 안성기 허준호 중에서 누구도 주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다. 이에 비해 '태극기…'는 장동건과 원빈이라는 꽃미남 두 배우에 집중했다. "그 결과 '실미도'는 보다 넓은 관객층에 호소했고, '태극기…'는 한국전쟁을 젊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심재명)
또한 관객이 공감하는 감정의 종류가 달랐다. 관객은 '실미도'를 통해 남자들의 동료애를, '태극기…'를 통해 뜨거운 가족애를 느꼈다. '실미도'는 "1970년대 한국 남성의 수난사를 그린 동지애의 영화"(평론가 심영섭)였고, '태극기…'는 "숱한 아버지와 장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우리사회의 굉장한 가족주의를 내세운 영화"(김영진)였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표현 양식은 또 어떠했나. 김영진씨는 "'실미도'는 국가 대 개인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였지만, 대중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전했다. 결국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비극. 그래서 '실미도'는 결국 신파영화"라고 말했다. 이춘연 대표는 "'태극기…'는 피난열차, 평양 시가지전투 등을 모두 재연했다. 화려한 불꽃놀이 같다. '태극기…'는 눈으로 즐기는 영화"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극장 입회인 도기철씨가 본 두 영화
"'실미도'는 600만명 든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실미도' 만큼은 간다."
서울 종로의 복합상영관 시네코아의 입회인(立會人) 도기철(51·사진)씨가 두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직감이다.
입회인이란 한 영화의 매표현황을 극장에서 일일이 확인, 영화사에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사람. 입회 전문회사 (주)캐스팅라인의 입회실장인 도씨는 이 일을 18년째 해오고 있다.
그 동안 본 영화만 해도 3,000편 가량. 개봉 첫날 첫 회 관객의 반응만 봐도, 상영중인 영화를 잠깐 보기만 해도, 그의 머리에서는 흥행 스코어가 곧바로 새겨진다. 분석이 아니다. 그야말로 현장에서 체득한 동물적 감각이다.
그는 '실미도'를 지난해 12월초 개봉 전 시사회장에서 봤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인간미가 넘치는 영화다. 예고편보다 훨씬 괜찮았다. 눈물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12월24일 개봉 첫날 첫 회 상영이 끝나고 강우석 감독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영화"라고 말해줬다. 당시 그의 예상 스코어는 600만명. "500만명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고 그 덕분에 1,000만명을 넘어선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틀렸다."
'태극기…'는 개봉 2주후에 봤다. '실미도'가 1,000만명을 돌파한 2월19일이었다. "장동건 원빈의 연기가 많이 늘었다. 컴퓨터그래픽도 놀랍다. 흠 잡을 데 없고, 화려하고 예쁜 영화다." 그러면서도 흥행성적 예상은 조심스럽다. "'실미도'는 최대 1,200만명까지 들 것이다. '태극기…'도 그만큼 가겠지만 흥행성적을 좌우하는 중년관객이 변수다."
두 영화의 매력에 대해서는 이렇게 요약했다. "'실미도'는 한국 중년들이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유한양행 사건'을 생생히 되살려냈다.
영화는 관객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강우석 감독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태극기…'는 한국 중년들로 하여금 '우리가 겪었던 바로 그 얘기'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웅 만들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두 영화 모두 군을 다룬 영화 같지만, '실미도'는 사실을 재조명한 서사 영화이고, '태극기…'는 형제애를 강조한 휴머니즘 영화다."
긴 세월 작품을 상영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10분 후에 상영됩니다. 재미있는 영화니 어서 표 끊고 들어오세요"라며 영화홍보도 해온 그의 1,000만명 관객 돌파에 대한 소감은 어떨까. "스크린쿼터를 맞추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국산영화 간판을 올린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한국영화를 추천할 수 있어 기쁘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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