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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꼴찌에 가까운 정치인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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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꼴찌에 가까운 정치인 도덕성

입력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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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감이 가득한 채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TV에서 격앙된 탄핵속보가 계속 들리는 가운데, 이 난에서 '문화'를 얘기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산란하다.국회는 육식동물 혈전장 같았다. 평화로운 초원의 초식동물과는 달리,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의 목숨을 빼앗아 먹이로 삼아야 하는 잔인한 속성을 지녔다. 다수의 국민과 법학자들은 이번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 야당은 힘으로 밀어붙였다. 야당 의원과 국회 직원은 여당 의원을 강제로 밀어냈고, 쫓겨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여당 의원의 아우성이 처절했다. '자업자득'을 몇 번이나 강조하는 국회의장, 기뻐서 박수를 치다가 제지당한 야당 의원, 눈물을 흘리며 저항하는 여당 의원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느 때보다도 비리와 무능으로 얼룩진 16대 국회였다. 그 마지막 회의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퍼포먼스로 장식된 것이다. 국민의 곤궁한 삶을 외면해 온 무책임한 정치의 종착지가 여기였다. 최근에는 의원 밥그릇을 지키려고 지역구 의석수를 16개나 늘렸다. 한나라당은 탄핵으로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비리를 희석시키고 총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야당 의원 195명 중 2명만 반대했다. 그들은 일사불란한 대열을 이루며 철석같이 단결했다.

총선이 꼭 한 달 남았다. 국회의원은 어떤 존재이며 다수당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몰염치한가. 미국 언론인 빌 오릴리는 '달콤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평생직업이 되었다. 쓴 돈은 경비 처리되고 봉급은 몇 10만 달러다. 자신들이 법만 고치면 올릴 수 있다. 휴가는 무한대이며, '해외순방'이라는 명목을 붙이면 여행도 공짜다. 어떤 정치가는 명예를 좇는다. 이는 임기 중에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체결해 거액의 재산을 모은다. 자기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은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기업과 거래를 한다. 린든 존슨은 이 돈을 '정치판의 모유'라고 불렀다. 정치인은 거짓말과 비방, 헛된 공약을 일삼게 된다.>

정치가 투명하다는 미국에서도 정치인의 이미지는 바닥이다. 1994년 정치학자 고든 블랙의 조사에 따르면, 상하원 의원의 정직성과 윤리성 점수는 중고차 판매원보다는 높고 변호사보다는 낮았다. 전문직 중 꼴찌에 가깝게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이미지와 평가를 한국 정치에 대입해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아니, 탄핵 과정을 보면 한국이 한참 밑이다.

1년여 전 우리는 '3김 시대'만 청산하면 참신한 정치로 도약할 것 같은 환상에 젖었다. 정파의 보스는 사라지고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버렸다. 그러자 야당 지도부는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모욕을 시작으로 일 년 내내 대통령을 헐뜯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꾸었을 일이다. '3김 시대'가 그나마 지니고 있던 공존의 명분은 실종되고 이기주의적 전술만 남았다.

한국 정치는 아직도 이성보다는 근육적 야만성에 의존하고 있다. 탄핵가결 자체는 민주주의의 진전일 수도 있다. 또 대통령에게도 허물이 있었다. 그는 헐뜯기와 모욕을 오기로 버텼지만, 직책에 걸맞은 도량과 포용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면서, 노무현 정부가 추구해온 고질적 지역주의 타파 등 개혁의 희망도 사라지는 것인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깊이 좌절할 것은 없다. 민주주의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 때로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숙해진다. 우리 현대사는 쓰라린 고난과 배신으로 얼룩졌지만, 그 때마다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 우리에게는 6·25 전쟁과 5월 광주 같은 비극을 이겨낸 저력이 있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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