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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입력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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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 '나이가 든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하루키는 나이가 든다는 것의 증거로 탈모와 비만을 들었는데 요즘 새삼스레 그 말에 공감이 간다. 나는 마흔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평소 머리 숱이 많던 나는 탈모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머리 속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들춰보던 아내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도 중년이 된 것이다!

내게 탈모 증세가 나타나자 주변에 온통 머리 빠진 사람들만 보이기 시작했다. 앞머리가 벗겨지거나, 머리 가운데가 뻥 뚫리거나, 옆 머리카락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탈모는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청춘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표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젊은 시절도 다 갔구나. 내게 남은 것은 늙는 것밖에 없구나라는….

나이가 들면서 고집도 늘어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동료를 보면 왜 저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집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고 체계가 보수적이 된다는 뜻이다. 음악을 들어도 시끄러운 유행가보다는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고, 젊은이들이 치고 받는 드라마보다는 가족 간에 훈훈한 정이 넘치는 내용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

고집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20대 때 나는 상사가 이런 저런 지시를 하면 겉으로는 "예"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신경 끄셔"라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나도 그런 기미기 보이기 시작한다. 젊은 친구들이 '까불까불'하는 것이 신경 쓰이고, 지시에 순응하지 않고 바로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이 거슬린다.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다.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수필가 피천득은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해도 단명한 사람이라고 갈파했다.

중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cjh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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