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가결을 보는 해외 투자자들의 태도가 의외로 담담하다. 탄핵 당일 주가와 환율을 뒤흔들었던 '검은 금요일(블랙 프라이데이)'의 충격은 하루 만에 상당 부분 흡수된 모습이다. '코리아 리스크'를 반영하는 외평채 가격에도 큰 변동이 없다.경악할 만한 이 정치적 격변에 투자가들은 왜 조용한 것일까. 탄핵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걸까. 아니면 국가원수 탄핵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한국경제의 펀더맨털이 건실하다고 믿는 것일까.
한 해외투자기관의 분석보고서를 보면 이 궁금증은 어느 정도 풀린다. "탄핵안 가결의 경제적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다. 탄핵 근거도 미약하지만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정치의 결속력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기 때문이다."(미국 베어스턴스 증권).
한국 정치는 오래전부터 '최악'이었기 때문에 탄핵조차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는 얘기다. 탄핵이 경미해서도 아니고 기초체력이 튼튼해서도 아닌, 한국경제는 이미 정치의 괴롭힘엔 면역력이 생겨 웬만한 정쟁에는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서글픈 역설'이 시장안정의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문제와 함께 정치불안은 S&P나 무디스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한국경제 리스크 평가에서 빠진 적이 없다. 퇴행적 정치는 이제 한국경제의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인 것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정치만 아니었어도 신용등급 1,2단계는 벌써 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안 가결로 세계적 블랙코미디를 연출한 정치권은 이제 앞다퉈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야단들이다. 실컷 망쳐놓고 민생을 살릴 정당은 자기뿐이라고 외치는 것 또한 희대의 코미디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 요즘 정치를 바라보는 경제계의 솔직한 바람일 것이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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