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민주당과 자민련이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전격 가결한 후 극심한 역풍을 맞고 있다.한국일보가 12일 오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38.2%의 지지를 얻은 데 비해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16.2%, 민주당은 7.1%에 그쳤다. 우리당의 지지율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두 야당의 지지율을 합한 것보다도 더 높게 나온 이 같은 추세는 같은 시기에 실시된 다른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은 탄핵정국 이후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고착 상태인데 비해 우리당은 적게는 8%포인트에서 많게는 10%포인트 이상 급상승했고 탄핵정국을 주도한 민주당의 지지율이 10%이하로 현격히 급락했다는 점이다.
또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졌다. 당장 탄핵안이 처리되던 1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작된 탄핵반대 시위가 다음날 서울 광화문에서 7만여명이 모인 거대 촛불시위로 이어지더니 지방 주요도시로까지 확산됐다. 당초 노사모가 주축이었던 시위는 이제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550여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행동'이 주도하고 있다. 마치 지난 대선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규탄 촛불집회를 방불케 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점은 이 같은 역풍이 이미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는데도 야당들이 자충수를 강행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더 큰 비극은 이 같은 결과가 비단 야당만의 불행이 아니라 국민의 시련으로 귀결돼가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관계를 되짚어보자.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9일 한나라당이 주축이 된 야당은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을 밀어붙였다.
이 사태는 곧바로 '합법적 탈옥'이라는 거센 비판을 몰고 왔고 결국 서 의원은 총선 불출마와 탈당을 선언함으로써 서 의원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태는 '민경찬 펀드 사건',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 '한화갑 의원 영장 청구 사건' 등 이른바 '3재(災)'로 허우적대던 열린우리당을 일거에 수렁에서 구출해줬다. 치밀한 전략·전술을 뒤로한 채 다수의 힘에만 의존한 야당의 패착이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또 다시 탄핵에 반대하는 다수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역시 우격다짐으로 탄핵안을 가결했다. 야당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둘러대지만 실은 총선 정국에서의 기선 제압을 위해 재차 무리수를 구사한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 노무현은 밉지만 대통령이 탄핵으로까지 몰리는 정국은 두려워하는 민심'을 너무 간과했다. 정동영 의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불기 시작한 우리당 열풍에 초조해서였는지, 혹은 '차떼기'로 몰린 수세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야당이 구사한 전술은 무모한 '인해전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야당의 현실 인식은 아직도 안이하기 그지없다. 우리당의 지지율 폭등을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안 가결에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일부는 방송의 편파 보도 때문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이제 총선이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야당이 다수의 힘을 믿고 민심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윤 승 용 정치부장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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