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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탄핵 정국은 성숙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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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탄핵 정국은 성숙의 기회

입력
200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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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치판은 아직도 매우 비합리적이고 유치하다.냉정한 계산보다 감정이 앞서는 미숙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탄핵소추 과정에서도 합리성보다는 감정이 주도한 것 같다. 우선 대통령의 사과 거부도 사려 깊은 고려보다는 오기가 작용한 것 같다. 그의 뛰어난 언어구사력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도 야당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얼마든지 쓸 수 있었을 것이다. 12일에 한 말을 11일에만 했더라도 이런 야단법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더더욱 감정적이었다. 사과만 하면 그만둘 정도의 이유로 탄핵을 발의하고 기어코 통과시켜 이렇게 큰 국정 혼란과 시민 불신을 초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감정의 만족 이외에 무슨 이익을 얻었는가.

총선을 한 달 정도 앞둔 지금 정당들의 모든 관심이 득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이번 탄핵소추에도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적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전략이 성공했는가.

탄핵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고 그런 반응이 야당들이 기대한대로 그렇게 쉽게 반전될 것 같지 않다. 감정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어리석은 전략이 나왔고, 정치적으로 미숙한 무리수를 두고 만 것이다. 야당의 실수로 상황은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에 유리하게 반전될 수 있고, 대통령의 미숙한 대응조차도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당이 탄핵 투표과정에 보여준 행동도 성숙한 것은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되므로 '다수의 폭거'라는 여당의 주장은 말이 안된다. 몸으로 저지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투표에 참여하여 아무래도 패배할 싸움을 신사적으로 졌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신임은 훨씬 커졌을 것이고 총선에서도 큰 반사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야당, 여당, 대통령 모두가 감정이 지배한 미숙한 정치 게임을 반복함으로써 자신들도 손해보고 국민들의 등도 터지고 있다. 이런 어리석음은 결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탄핵안은 통과되고 말았고, 엎질러진 물을 두고 계속 한탄하고 항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치계가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하여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감정적이 된다면 탄핵 못지 않게 큰 재앙이 닥쳐올 수 있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도 의원직 총사퇴라는 감정적 대응을 중단하고, 탄핵에 반대하거나 찬동하는 단체들도 극단적인 행동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런 행동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할 것이고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탄핵의 잘잘못은 4·15 총선에서 가려내기로 하고, 지금은 정치인이든 시민이든 냉정하고 차분하게 부작용을 줄이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 기회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없어도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 제도, 합의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다.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책임 있게 대행하고, 공무원들이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하며, 시민들이 차분히 법과 규정을 잘 지키면 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네덜란드는 한때 정당들 간에 합의가 되지 않아 6개월 이상 내각도 수상도 없었지만 사회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경제는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성장하였다. 경제는 정치의 영향을 적게 받는 것이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고, 우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 동안 우리 공직사회도 많이 성숙했고 제도도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므로 모두 위기의식을 가지고 냉정하게 대처하면 우리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손 봉 호 한성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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