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당뇨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한 현대병'으로 불린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내과 박경수(45) 교수는 이를 '유전병'으로 규정한다.비슷한 체중에 비슷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혈당 수치는 저마다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당뇨병으로 진단될 만큼 혈당이 높아도 누구는 5년만에 치명적인 합병증이 나타나는가 하면, 누구는 15년이 지나도 탈이 없다. 이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비밀의 열쇠는 유전자다.
박 교수는 올해에만 '당뇨병' '당뇨병학' '임상 내분비·대사 저널' 등 해외 저널에 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정 유전자에 따라 당뇨병 발병이 억제된다거나, 비만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조사결과를 밝힌 내용이다.
물론 1, 2개 유전자만으로 당뇨병의 발병확률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것은 서곡에 불과하다. 박 교수가 소장을 맡고있는 '당뇨 및 내분비질환 유전체 연구센터'는 지난 3년간 2,000명의 당뇨병 환자와 500명 정상인의 샘플을 차곡차곡 축적, 유전자 분석에 전념하고 있다. 박 교수는 "올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변이를 검사할 칩을 고안하는 것으로 시작해 2∼3년 안에 유전자 진단 칩을 개발, 당뇨 발병위험을 몇 %로 예측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뇨는 우리나라의 4번째 사망 원인입니다. 관상동맥을 뚫는 시술의 절반, 혈액투석·교통사고를 제외한 다리절단·실명의 가장 큰 원인 또한 당뇨입니다. 그런데도 환자의 절반은 자신이 당뇨라는 것을 모릅니다. 위험도를 예측하는 진단 칩이 나오면 소아·청소년기부터 관리를 시작할 수 있어 발병률 자체를 크게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는 또 "같은 당뇨환자 중에서도 심각한 합병증을 낳을 수 있는 유형, 임신으로 당뇨가 되는 유형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2, 3년 내에 예측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다 장기적으론 치료 예후를 예측하는 칩도 목표에 두고 있다. 박 교수는 "약이 잘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을 미리 유전자검사로 구별할 수 있다면 값비싼 치료비를 낭비하지 않고도 맞춤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예측은 그렇다 치고, 이미 성인 10명 중 1명 꼴로 늘어난 당뇨병 환자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 세포를 이식하는 세포치료가 가장 이상적인 치료가 될 것입니다. 이미 캐나다와 미국에서 뇌사자로부터 얻은 세포를 이식한 사례가 있는데, 수는 많지 않았지만 성공률은 80% 이상이었습니다.
문제는 췌도 세포를 어디에서 얻느냐는 것입니다. 뇌사자로부터 얻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해결책으로 국내에서도 줄기세포의 분화연구와 거부반응을 없앤 돼지 생산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늦어도 10년이면 결실이 나지 않을까요?"
그에게는 또 다른 비장의 카드가 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다. 미토콘드리아는 열을 발생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속의 발전소'. 당뇨와 관련된 PPAR-감마, 아리포넥틴 유전자 등도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조절과 관련돼 있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유형과 기능이 당뇨·비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것이 서울대병원 이홍규 교수였고, 이에 대한 연구는 서울대가 상당부분 선점한 상태다.
박 교수는 "10여년 전 처음 미토콘드리아 가설을 주장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지만 이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와 혈당의 관련성에 대한 증거가 쏟아지고 있다"며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올리는 것이 당뇨·비만 치료의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꿈을 가슴에 품었어도 박 교수는 또 다시 좌절하곤 한다. 곧 당뇨병으로 발전할 게 뻔한데도 "장관 자리가 눈 앞에 있다"며 몸을 돌보지 않는 중년, 신장 합병증과 싸우면서도 신장에 부담 큰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환자들…. 박 교수는 또 한번 '뻔한 당부'를 반복한다. "당뇨는 관리만 잘 하면 평생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바로 지금부터 주의해야 합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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