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 8월 15일. 전국에 TV로 생방송되는 가운데 서울 광화문에 있던 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작업 최초의 행사인 중앙돔 첨탑 해체작업이 벌어졌다. 첨탑은 동판과 콘크리트 재질로 직경 3.5m, 높이 8.5m, 무게가 35톤에 달했다. 이 장중한 첨탑을 자른 것은 국민들에게도 아주 생소한 다이아몬드 줄톱이란 것이었다. 바로 이화다이아몬드(주)가 국내 최초로 만든 '다이아몬드 와이어 쏘(Diamond Wire Saw)'란 제품이었던 것이다.세계적 기술력 정평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석재와 콘크리트의 가공 및 절단에서부터 자동차용 부품, 반도체 가공에 이르기까지 산업전반에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공구를 생산하는 이화다이아몬드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다이아몬드 공구 분야를 개척, 현재 이 분야 세계 5위안에 들어가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75년 창업 이후 29년 동안 한번도 적자를 본 적이 없다. 연간 매출액 1,200억원 내외의 중소기업이지만 이 같은 성공의 뒤에는 피나는 기술개발이라는 노력이 숨어 있다. 중소기업으로선 드물게 건평 250평 규모의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석·박사 39명 등 50여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력으로 탄생한 이화다이아몬드 제품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늘 진가를 발휘해왔다.
성수대교 붕괴 후 수중 램프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폭파할 경우 수질오염 및 환경 파괴 문제가 불거져 당국이 고민에 빠져 있었다. 결국 이화다이아몬드의 다이아몬드 와이어 쏘가 동원됐고 국내 처음으로 수중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을 절단하는 작업을 성공리에 마쳐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근 청계고가도로 해체 작업에도 동원돼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초정밀 공구 잇따라 개발
이 회사가 국내 최초로 생산한 제품도 부지기수다. 공차범위 5㎛ 이내의 반도체 웨이퍼 절단공구인 '다이싱 블레이드', 반도체 웨이퍼의 연마공구인 백 그라인딩 휠(Back grinding wheel), 0.2㎜두께의 원형 금속판 끝에 0.3㎜두께, 높이 5㎜의 다이아몬드와 금속분말을 혼합한 뒤 접착해 만든 '다이아몬드 커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연구소는 정부가 지난해 세계적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우수한 기술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부설 연구소를 선정, 제조기술 연구센터로 지정하고 각종 자금 지원을 해주는 정부지정제조기술연구센터(NMRC)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재 개발 및 육성에 주력
세계적 기술력 확보를 위해선 인재를 개발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게 이 회사의 경영철학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으로선 드물게 대학을 순회하며 채용설명회를 열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직원들의 재교육을 위해 중국어와 일어, 영어 등 사내 어학 강좌를 개설했으며, 학점이수제도 도입하고 있다. 기회가 되는대로 직원들을 해외 전시회에 참석시키고, 연수 기회를 제공, 글로벌 마인드를 갖도록 하고 있다.
정하석(62) 사장은 "정직한 기술력은 반드시 인정받는다"며 "날로 치열해지는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에서 생존하는 길은 고급인력을 바탕으로 고부가 가치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전략으로 승패 가려
이화다이아몬드는 업계 최초로 93년 중국 웨이하이(威海)와 푸젠(福建) 등 2곳에 생산 공장을 건립했다. 이어 태국에 가공 공장을 세우고 일본과 독일에 현지 법인 사무소를 두고 있다. 중국의 저가제품 공세에 대비하고 현지 밀착 경영을 통해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것이었다. 현재 이 회사가 생산한 제품의 63%는 주로 유럽과 북미지역 등 60여국에 수출되고 있다. 또 올해부턴 고부가 산업용 공구의 수출을 늘리는 한편 신흥 동남아시장과 남미, 중동 지역을 공략할 예정이다.
정 사장은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는 기업을 멍들게 한다는 게 나의 철학"이라며 "다이아몬드 공구의 신기술 개발을 통해 고객의 부가가치를 높여 공존하는 것만이 글로벌 리딩 컴퍼니로서의 위치를 굳히는 길"이라고 말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 어떤 회사인가
이화다이아몬드(주)는 경제개발을 목표로 전 국민이 산업 근대화에 매진하던 1975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김수광(64) 회장 등이 다이아몬드 공구를 개발, 값비싼 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대체 효과를 얻고 전 세계로 역수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창업을 했던 것이다. 창업 이후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정하석(사진) 현 사장 등이 가세하면서 다이아몬드공구 개발의 성패는 기술력에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신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이에 따라 85년 경기 오산시로 본사를 확장 이전하고, 93년 서천공장, 95년 옥산 공장, 96년 평택공장을 잇따라 준공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본격 나섰다. 수출에 주력하면서 87년 200만불 수출탑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8년만인 95년도에는 5,000만불 수출탑을 받아 '대통령 표창' 및 '금탑 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기술력은 지금까지 받은 각종 상에서도 입증된다. 94년 '장영실상', 95년 기술경진대회에서의 '국무총리상', 98년, 99년 2년 연속 한국능률협회에서 주관하는 월드베스트어워드(W.B.A) 에서 금상과 다이아몬드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산업자원부에서 주관하는 생산성대상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2001년 반도체 기술개발 경진대회에서 협회장상을 받았다.
이 같은 영광의 뒤에는 700여명의 종업원들과 화합이 있었다. 노사간 허심탄회한 대화로 최근 10년간 무분규를 기록, 96년에는 '100대 노사 우량기업'으로 선정됐고, 2001년 경기도 산업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최근 '기업전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2000년 전자결재를 실현했다. 해외 출장이 잦은 정 사장은 해외에서도 실시간으로 결재를 하고 있다. 2002년에는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ERP)을 구축, 영업 수주에서 납품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전산화했다.
이화다이아몬드는 세계 각국의 치열한 시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이 같은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춘 것을 기회로 지난해 1,233억원이었던 매출을 올해엔 1,400억원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황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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