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평론가 황문평(본명 황해창)씨가 13일 오전 11시50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영화 주제가로 만든 '빨간 마후라'(1964년)의 작곡가로 유명한 고인은 평생 한국 가요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고 해방 이후 거의 모든 가요선발대회, 가요제는 물론 영화계 심사위원까지 맡으며 정열적으로 활동해 '한국대중문화사의 산 증인' '대중문화 백과사전'으로 불렸다.1920년 황해 해주 출생인 그는 서울 배재고보를 거쳐 1939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서 성악과 작곡을 공부하면서 음악의 길에 뛰어들었다.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 영화음악에 투신했다. 48년 한국 최초의 음악영화로 꼽히는 '푸른 언덕'의 주제가를 비롯해 '호반의 벤치' '꽃 중의 꽃' 등 영화·드라마 음악 800여 곡을 작곡했다.
짧은 스포츠 머리, 우직해보이는 인상대로 그는 불편부당한 태도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성격으로 '황고집' 등으로 불렸다. 작곡료를 늘 제때 못 받아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는 언젠가 영화음악 작곡료를 못 받자 필름을 잘라낸 뒤 작곡료를 주면 필름을 돌려주겠다고 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기개도 대단해, 60년대 임화수가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던 시절 배우 김희갑을 때렸다는 소식을 듣고 임화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48년 KBS 전속악단 피아니스트로 시작한 그의 방송 활동의 족적도 뚜렷하다. 56년 최초의 TV인 HLKZ-TV국 편성과장을 맡아 국내 첫 쇼PD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음악비평과 가요사 연구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 부어 '황문평 작곡집'과 가요 야화를 담은 '노래따라 세월따라',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한 '노래 백년사' 사랑도'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장녀 인아(仁雅·60), 장남 인규(仁圭·58·Junco 대표이사), 차남 원규(元圭·56·사업)씨. 발인 1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고양시 벽제 승화원.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02)3410―6902,6914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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