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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이후/"이러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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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이후/"이러다간"

입력
200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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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탄핵 후폭풍이 18일로 예정됐던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를 뒤로 밀어버렸다. 단순히 날짜만 연기될 것 같지 않다. '전대 취소론' 등이 제기되면서 당초 그려놓은 로드맵이 헝클어질 공산이 커졌다. 배용수 부대변인은 13일 운영위 회의 발표를 통해 "탄핵의 당위성 홍보 등에 우선 당력을 모으기 위해 전당대회를 연기한다"며 "1주일 정도 연기하는데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문제는 전대 연기와 맞물려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상대책기구 구성 주장이다. 탄핵과 관련, 대국민 홍보전과 법률지원을 담당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주장의 표면적 논리지만 속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대 이후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박근혜 체제'로는 현 국면을 돌파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전대가 흥행도 안될 게 뻔해보이는 상황에서 15일짜리 대표로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비상기구가 총선을 총괄 지휘하는 모양새를 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탄핵을 이끈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 등 지도부는 뒤로 물러서고 노·장·청을 아우르는 체제의 비상기구로 총선을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대 취소론 내지는 제3지도부 대안론으로 요약되는 이 주장은 당내서 급속히 세를 키워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소장파 등은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 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탄핵 당위성 등을 홍보할 특별위원회 성격의 기구는 필요하지만 모든 권한을 갖는 비상기구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일각의 전대 취소론에 대해서는 "당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윤여준 의원도 "새로운 지도체제가 빨리 들어서서 당의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시점에 무슨 비상 기구냐"며 "지금을 비상사태로 규정하지 않는 당이 비상기구를 구성하겠다는 것도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이상득 사무총장도 "지금으로선 전당대회를 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민주당 탄핵안 가결 역풍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탄핵안에 반대했던 설훈 조성준 박종완 정범구 의원 등 4명이 14일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고, 영입인사 등의 탈당도 잇따르는 등 상당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또 호남에서조차 지지층 이반 조짐이 나타나자 당 안팎에선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우려도 커져가는 양상이다.

설 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식과 양심에 비춰 대통령 탄핵안 발의와 가결은 정도를 벗어났다"면서 "어떤 변명으로도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는 만큼 지도부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영입인사로 순천에 공천 신청했던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고재방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도 "민주당이 정체성을 잃었다"며 탈당했다. 이에 대해 조순형 대표는 이날 상임중앙위에서 "조직 구성원의 기본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상응한 대가를 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일축했다. 조 대표는 또 "케네디가 쿠바 침공에 실패했을 때 일부 각료들이 '나는 반대했었다'고 하자 케네디는 '성공의 아버지는 100명이지만, 실패는 고아다'라고 했다"면서 "만약 국민여론 70%가 탄핵을 지지했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왔을 것이냐"고 격노했다. 하지만 정범구 의원은 "지도부가 이성을 잃은 것 같다"면서 "당내 의견차이가 이렇게 벌어지면 당이 유지되겠느냐"고 탈당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날 '편파방송'을 이유로 KBS와 MBC를 항의 방문하고 "노 대통령의 국정실패가 탄핵을 자초한 것"이라며 탄핵소추의 불가피성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 것 등도 이 같은 위기의식과 무관치 않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우리당 열린우리당은 14일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여론의 역풍에 놀라면서도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야당을 '의회 쿠데타세력'이라고 몰아 세우며 총공세에 나서는 한편 국정안정 세력으로서 차별화를 위해 경제 챙기기 행보도 재개했다. 고조된 지지세를 선거일까지 이어가기 위한 전략이다.

정 의장은 전날 비상시국 대책회의에서 "야 3당의 헌정유린 만행을 반드시 무릎을 꿇릴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또 "쿠데타세력과 개혁세력의 대결이 분명해진 만큼 국정을 파탄시킨 야3당은 이 참에 합당하라"고 공격했다. 총선까지 정국을 '안정개혁 대 수구혼란'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 의장은 또 야당 일각의 개헌 및 총선연기론을 "단호히 분쇄하겠다"고 못박았다.

의원과 당직자들은 한껏 들뜬 분위기다. "표정관리 잘 하라"는 말이 돌고 "총선은 이미 끝났다"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강현욱 전북지사가 입당하고 탈당했던 유선호 전 의원이 복당한 것도 지도부를 고무시켰다.

그러나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며 역(逆)역풍에 대한 경계론도 적잖다. 당초 검토했던 대규모 장외 규탄집회를 백지화한 것도 "여당이 앞장서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여론을 겁냈기 때문이다. "야당을 너무 몰아붙이면 보수층이 결집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 때문에 규탄집회는 '노사모'와 '국민의 힘' 등 외곽 단체에 맡기고 당은 민생 행보에 전력하는 전략적 역할분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쿠데타 세력이 배신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민생 행보를 재개했다. 정 의장이 이날 경제5단체장들과 만나 "투자·채용 계획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5일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조찬을 함께 하고 민생경제특별상황실도 꾸리기로 했다.

우리당은 이날 영등포 청과물공판장 건물로 당사를 이전, '서민곁으로' 프로젝트도 실행에 옮겼다. 새로 이웃이 된 시장 상인들에게는 "흔들림 없이 생업에 종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자민련은 14일 곤혹감 속에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막판 탄핵 소추 찬성쪽으로 돌아서면서 가결에 결정적 힘을 보탰지만 이후 역풍이 만만찮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여론 조사에서 '텃밭' 충청권의 민심이 '행정수도 이전 무산'을 우려하는 분위기를 업고 급격히 열린우리당으로 쏠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곤혹스러움은 더한다.

정우택 의원은 "지역에서 역풍이 부는 것은 사실"이라며 "시간이 지나 국민이 이성적 판단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야당들과 달리 당초 탄핵 소추 발의에 반대했고 그 이후에도 줄곧 반대 당론을 유지해왔음을 애써 부각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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