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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역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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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역사의 풍경

입력
2004.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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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강규형 옮김 에코리브르 발행·1만3,500원

역사가들은 어떻게 역사를 그리는가. 미국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예일대 석좌교수)가 쓴 '역사의 풍경'(원제 'Landscape of History'· 2002년) 번역판에 붙은 부제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이 터지고 보니, 이 오래된 질문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훗날 역사가들은 12일 난장판 한국 국회에서 벌어진 고함과 눈물의 액션 스펙터클을 어떻게 묘사할까.

이 책의 주제는 역사학 방법론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역사적 진리는 있는가, 역사는 예술인가 과학인가 등 역사학자의 철학적 고민이 이 안에 담겨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역사란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차별적 상대주의나, 거꾸로 역사에서 단정하고 예측가능한 선형(線型) 이론을 확인하고자 했던 과거 역사학의 패러다임을 모두 부정한다. 대신 카오스·복잡성 이론 등 최신 자연과학의 개념과 성과로부터 역사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내고 있다.

역사는 수많은 변수의 상호작용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복잡계이며 따라서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역사를 관통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종의 패턴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주제와 달리 지은이의 접근법은 뜻밖에도 매우 유연하고 경쾌하며 익살스럽다.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에서 역사철학을 끌어내는가 하면, 동일 주제를 다룬 15세기와 20세기 회화 작품의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역사 서술의 특성을 점검하는 등 다양한 소품을 동원해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논지를 펼치고 있다. 우아한 위트를 지닌 이 세련된 안내자 덕분에 독자는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역사학의 화두에 다가설 수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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