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회는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 처리를 두고 여야는 한치의 양보 없이 부딪혔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과를 거부하고 선(先) 탄핵 철회를 주장한 게 야당을 자극,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2일 결전에 대비, 3당이 모두 이날 밤을 국회에서 지새는 진풍경도 연출됐다.본회의장을 감싼 팽팽한 긴장감은 이날 밤과 12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밤 11시께 야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점거한 의장석을 탈환하기 위해 본회의장을 기습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달았으나 야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당 의원 30여명은 이날 종일 의장석 통로에 앉아 방어진을 쳤다. 날치기를 막기 위해 표결 개시 및 결과 선포를 의장석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110조 등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우리당 의원들은 밤10시께부터는 아예 의장석 뒤편 쪽문 손잡이를 나일론 끈으로 동여매 봉쇄하고 개표대와 의자로 바리케이드까지 쌓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심야에 각각 의원총회를 가진 뒤 본회의장과 예결위 회의장, 의원회관 등에 분산해 대기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는 저녁에 의장실을 찾아 밤늦게라도 본회의를 열자고 주장했으나 박관용 의장은 거부했다. 한나라당은 "노사모 회원 등이 공관을 점거하고 출근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박 의장의 퇴근을 막았다.
이에 앞서 본회의는 여야의 팽팽한 기싸움 끝에 무산됐다. 박 의장이 국회 경위들의 호위 속에 본회의장에 입장한 시각은 오후4시25분. 회의장엔 한나라당 의원 125명, 민주당 의원 55명이 자리한 상태였고 열린우리당 의원 30여명은 의장석 주변을 감쌌다. 박 의장은 의장석 진출이 어렵자 오후4시35분께 의원 발언대에 서 "국회의장으로서 적법 절차에 따라 소집되고 회부된 안건은 처리해야 한다"며 "의장석 가는 것을 막는다면 자위권을 발동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석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 의장은 10분 후 다시 의장석 진입을 시도했으나 우리당 의원들에게 가로막혔다. 이 과정에서 "내 몸에 손대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호통과 "왜 회의도 못 열게 하냐"는 야유, "한나라당과 민주당 마음대로 되느냐"는 비난이 뒤엉켰다.
박 의장은 5시15분께 3차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30여분 뒤 다시 발언대로 나가 "타협과 대화를 모르고는 대의정치를 하기 힘들다"고 개탄한 뒤 "오늘 회의는 열 수 없을 것 같다"며 5시55분 퇴장했다.
/이동훈기자dhlee@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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