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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산 진단서로 구속·형집행정지/有錢無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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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산 진단서로 구속·형집행정지/有錢無刑

입력
2004.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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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 생활 2년7개월 중에 감옥에서 보낸 세월은 고작 10개월….' 재개발조합 비리로 구속된 분양대행업체 D종건 전 대표 이모(59)씨. 이씨에겐 지병인 심장병이 있었다. 하지만 심장병은 이씨에게 결코 고통이 아니라 언제든 감옥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의사에게 뇌물을 주고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진단서만 받으면 손쉽게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씨의 '꾀병'행각은 2001년 8월 경찰에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경찰서에 대기 중 감시소홀을 틈타 도주한 뒤 4일후 "심장병이 도졌다"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운 상태에서 자수했다. 이씨는 서울대의대 이모 교수에게 1,500만원을 주고 받은 허위 진단서를 제출한 뒤 이후 한달 동안 병원에서 불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었고, 구속된 뒤에도 이씨는 수차례 '실신 쇼'를 연출한 끝에 2002년 1월 역시 뇌물을 받은 구치소 의무과장과 이 교수의 도움으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당시 이 교수의 진단서는 발행번호도 없는 가짜였지만 재판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씨는 감시요원조차 없는 병실을 탈출, 1년4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지난해 9월 해외 도피 직전 검거됐다. 이씨는 도피 생활 중 단 한번도 병원을 찾지 않은 '무늬만' 환자였다.

건강 문제로 수감생활이 어려운 재소자에게 사법기관이 구속이나 형의 집행을 정지하고 치료의 기회를 주는 형·구속집행정지 제도를 악용, 의료진과 구치소 간부들이 거액을 받고 허위·과장 진단서를 발급해 이른바 '범털'(고위층) 재소자들이 '합법적 탈옥'을 했던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곽상도 부장검사)는 11일 전 서울구치소 의무과장 정모(47)씨와 전문 브로커 3명을 뇌물수수 및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하고, 이모(67) 전 서울대병원장, 이모(53) 서울대의대 교수, 정보근(40) 한보그룹 회장, 임모(59) 전 서울구치소장 등 6명을 뇌물공여 또는 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1996년 '한보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아들 정 회장을 통해 주치의였던 전 서울대병원장 이씨에게 3,000만원을 건네주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2002년 5월 형집행정지를 받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이씨는 고혈압 전문의를 시켜 조직검사도 하지 않은 채 대장암 진단서를 발급했다.

검찰은 구속된 전 서울구치소 의무과장 정씨 등 의료진은 당초 '수감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발급했다가 뇌물을 받은 뒤에는 "뇌경색이 나타나면 치명적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식으로 내용을 수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대학병원 의사의 진단서는 그동안 권위를 인정받아 왔으나 수사결과 환자측에 매수돼 내용을 과장, 왜곡한 사례가 다수 발견돼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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