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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54>리베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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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54>리베르만

입력
2004.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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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12일 옛 소련의 경제학자 예브세이 그리고리에비치 리베르만이 86세로 작고했다. 리베르만의 이름이 당시 공산권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알려진 것은 그가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1962년 9월9일자에 '계획·이윤·프리미엄'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서였다. 당시 하르코프 기술경제대학 교수였던 리베르만은 당 제1서기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허락을 받아 기고한 이 논문에서, 투자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집단 소유제 아래서라도 계획경제의 유연화와 기업의 상대적 자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리베르만의 이 논문은 곧 소련 전체에 '이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리베르만 논문의 핵심은 생산자들이 창출한 이윤의 크기에 따라 보상금을 주자는 것이었다. 기존의 총생산액 방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품질의 조악과 관료주의의 비대가 가져온 비능률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으로라도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리베르만의 생각이었다. 그의 제안이 정권 핵심부의 뜻을 담고 있었으므로, 이어진 논쟁은 다소 형식적인 것이었다. 리베르만 방식 또는 하르코프 방식이라고 명명된 이 이윤 보상 제도는 1964년 한 해 동안 실험적으로 실천된 뒤 1965년 당 중앙위원회에서 채택돼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리베르만은 재능과 노력의 차이를 보상의 차이로 공인하지 않는 사회는 퇴락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너무 커져 버리면 사회주의의 평등 이념이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리베르만 방식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에도 퍼져나가 엄격한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파와 이윤 보상 제도를 도입하려는 개혁파 사이에 알력을 만들어냈다. 흔히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자유화 운동의 이면에도 리베르만 방식의 도입을 둘러싼 공산당 내부의 갈등이 있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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