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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얼치기 출판자본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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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얼치기 출판자본만 모른다

입력
2004.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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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를 보러 가자는 식구들의 성화에 떠밀려서 인천 앞바다의 무의도를 찾았다. 할머니들과 개들과 소나무 숲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작은 섬 마을, 그곳이 관광지 개발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었다.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에는 차량행렬이 꼬리를 잇고, 카페와 콘도식 민박 집이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중이었다.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지라는 것, 그것이 조용한 섬을 온통 뒤흔드는 이유였다.실미도가 바라다 보이는 갯가에서 바지락을 주워 담으면서 나는 질투심에 몸을 떨었다.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이는 영상매체의 힘, 영화인들이 확보해 낸 정책적 지원, 이런 것은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책과 영화는 어차피 맡은 역할과 갈 길이 서로 다른 매체이니까.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감독으로 대표되는 영화계의 지식 노동자들이 자본을 포섭하고 통제하는 모습이었다.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곧 생산 수단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니는 지식 노동자가 자본과 기술보다 우위에 서는 세상을 거기서 보았다. 그 위에 겹쳐지는 출판의 현실은 초라하다. 출판 문화와 산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명 편집인들과 베테랑 영업인들이 몰상식한 가족자본의 배신과 조롱에 지쳐서 강요된 창업의 길로 나서고, 그렇게 해서 해마다 수백 곳의 구멍가게가 새로이 문을 연다. 지식사회 한가운데서, 지식산업의 대표선수인 출판인들은 겨우 '상식'이 통하는 자본에도 감지덕지하며 이 회사, 저 회사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고 겨울이 올 것을 안다"고 했다. 출판환경에도 이미 지각변동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모든 사회조직에서 단 하나의 의미있는 경쟁우위는 지식노동자의 질과 생산성"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은 지금 출판산업의 사활을 가를 만큼 중차대한 명제이다. 직원들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100배는 현명한 일이라고 믿는 얼치기 출판 자본들만 세상 변하는 사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한 필 훈 길벗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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