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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찬물 끼얹은 "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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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찬물 끼얹은 "휴대전화"

입력
200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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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알런의 독백이 시작된다. 잔잔한 음악 사이로 아련하게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 거친 말의 숨소리가 들리고 알런은 여섯 살짜리 꼬마가 되어 모래성을 쌓고 있다.

2층까지 꽉 찬 관객들 모두 숨을 죽이고 알런을 지켜본다. 객석과 무대가 하나 되는 그 순간 극장 안에 울려 퍼지는 요란스러운 휴대전화 벨 소리. 알런을 지켜보던 시선들이 벨 소리를 따라 흩어지고 무대 위 배우들은 "휴" 하고 맥 빠진 한숨을 내뱉는다.

거기서 끝나면 참으로 다행일 텐데, 무신경한 그 전화기의 주인은 당당하고 잽싸게 '종료' 버튼을 누른다. 성능 좋은 60화음 최신형 전화기는 꺼져가는 그 순간에도 신비로운 벨 소리를 남기고 사라져간다.

이런 일이 아직도 연극 한 회 공연 도중 대여섯 번은 일어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요즘은 한술 더 떠 카메라폰으로 틈만 나면 찍어대고, 틈틈이 문자 메시지 확인하고, 카메라를 동원해 플래시까지 터트려대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때마다 배우의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객석 분위기도 산만해진다. 배우와 관객이 공유하던 정서는 전화벨 소리 따라 사라져버리고 무대와 객석 사이의 호흡도 플래시가 터지는 그 순간 깨져버린다. 결국 무신경한 몇 사람의 관객으로 인해 나머지 관객들은 더 좋은 공연 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공연 관계자들이 화를 낼 일이 아니라, 관객들이 분통 터트려야 될 일인 것이다.

얼마 전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놨다가 공연 도중 전화를 받으시면서 "어, 나 연극 봐. 재밌어" 하시던 그 분, 정말 너무합니다.

길해연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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