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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포트/노틸러스효성 최병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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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포트/노틸러스효성 최병인 사장

입력
200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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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틸러스효성의 최병인(43) 사장에게는 '네모'라는 특이한 별칭이 있다. 얼굴이 네모나게 생겨서가 아니다. 언뜻 외국계 합작사의 인상을 풍기는 특이한 사명(社名) 덕분이다. '노틸러스'(Nautilus)는 프랑스의 과학소설가 줄 베르느의 '해저2만리'에 등장하는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 소설 속의 노틸러스를 지휘하는 함장이 네모(Nemo)다. "정보기술(IT) 업계는 1만미터 아래의 심해만큼이나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만큼 멋진 신세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죠."신세계를 향한 항해

최 사장이 노틸러스효성에 승선한 것은 2000년의 일. 이전에는 유명 컨설팅 회사의 임원으로 일했다. 93년 미국에서 경영 컨설턴트 일을 시작한 이래 8년여간을 맥킨지와 앤더슨 컨설팅에 몸담았다. 자동차 회사 포드의 경영 개선작업을 맡았고, 95년 귀국 이후에는 국내 유수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자문을 했다.

효성 그룹과의 인연도 의뢰회사(클라이언트)와 컨설턴트의 관계로 시작됐다. 97년 당시 효성의 경영개선 작업에 참여해 현재 섬유, 화학, 중공업, 건설, 무역 정보통신 등 6개 부문 (PG)으로 나뉘어진 그룹의 새 틀을 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그룹사의 대부분은 주력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 개념이 강하지 못했던 때였다. 조직에 선진 경영기법의 잣대를 들이대 진단과 처방을 해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항상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데 골몰해 있던 그에게 조석래 효성 그룹 회장이 역(逆)제안을 해왔다. '아예 회사로 들어와서 경영을 해보지 않겠냐'는 것. 40세에 이미 컨설턴트로서 적잖은 명성을 쌓아 임원(시니어 컨설턴트)으로 승진한 마당에 쉽지 않은 판단을 굳힌 것은 젊은 열정 때문이었다. "말로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내가 해보고 싶다는 욕망에 지고 말았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좌우명에 어울리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가라앉는 모든 것을 버려라

조 회장은 최 사장에게 효성 데이타시스템을 맡겼다. 기업의 전산정보화를 구축해주는 시스템통합(SI) 전문업체였다. 그룹 전산정보화를 위해 각 계열사의 전산실을 합쳐놓은 형태의 SI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기에 탄생해 여느 회사와 다름없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SI업계에선 솔루션 개발이나 시스템 구축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고, 계열사의 각종 전산 용역이 주수입원이다. 이러한 사업구조상 대형 그룹의 SI회사들이 유리하기 마련. 오늘날까지도 삼성SDS나 LG CNS, SK C&C 등 업계 상위권 업체들의 순위가 모 그룹의 재계 순위와 일치하는 것은 이 같은 우리 기업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리정보시스템(GIS) 사업이었다. 최 사장은 "처음 6개월은 새 일을 선택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기존 조직과 문화를 고수하려는 임직원과 씨름을 해야 했고, 불과 1년 새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경쟁력 있는 부문만 남기면서 당시 컴퓨터와 금전자동출납기(ATM) 생산을 주로 하던 효성 컴퓨터와의 합병을 시도했다. 그룹 전체의 IT 부분을 통폐합 함으로써 상승효과의 극대화를 추구한 것이다. 2002년 7월 두 회사의 결합으로 노틸러스효성이 탄생했다. 사명은 어린 시절 과학자와 모험가의 꿈을 동시에 안겨줬던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의 이름을 따라 그가 직접 지었다.

지도 바깥의 선입견을 넘어서

지난해 말 노틸러스효성은 ATM 분야에서 55%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 출혈경쟁으로 대당 단가가 적정가의 절반 수준인 2,000만원 미만으로 폭락,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노틸러스 효성은 해외 시장에서 NCR·후지쯔 등 선발업체들과 겨뤄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 사장의 경영 수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0대 그룹 계열사 중 최연소 최고경영자라는 타이틀의 뒤에는 또 다른 선택의 고비가 있었다. 84년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한 그의 꿈은 본래 과학자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거쳐 미국 매사추세스 공대(MIT) 박사가 되기까지 목표는 변하지 않았고, 이곳에서 초전도 공학 연구원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꿈은 이뤄지는 듯 했다. 교수직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우연찮게 얻게 된 인터뷰 기회가 맥킨지 컨설턴트였다. "맥킨지 인터뷰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터라 한번 연습해보겠다고 지원한 것이 인생을 바꿨죠." 맥킨지는 첨단 공학을 전공한 그의 능력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영입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반년간의 망설임 끝에 맥킨지를 선택하면서 최종 항로는 지도 밖의 미지를 향했다.

슬하에 세 딸을 둔 최 사장은 98년 아들을 입양했다. 이제 6살이지만 최 사장 내외가 양부모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들도, 부부도 그런 사실을 굳이 의식치 못할 만큼 끈끈한 애정을 과시한다.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이 더 크더라"며 "피를 나눈 것 이상으로 경험의 공유가 중요하다"는 그의 가족관은 '편견'이라는 심해의 괴물에 맞선 노틸러스의 날선 고물을 떠올리게 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사진=배우한기자

● 노틸러스 효성

노틸러스효성은 2002년 7월 효성컴퓨터(주)와 효성데이타시스템의 합병으로 설립된 시스템통합(SI) 및 종합 금융 솔루션 전문회사다. 주력 사업은 금융자동화기기(ATM, CD), 소형 키오스크, 편의점 등을 통한 복합금융서비스, 네트워크 구축 및 통합 등이다

ATM 분야에서는 은행권 중심의 내수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1위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8년부터 소형 ATM 기기등을 개발해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 비금융권 시장에서 NCR, 후지쯔 등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자본금은 41억원, 직원은 660여명이며 지난해 2,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비상장 기업으로 대주주는 (주)효성(40%)일본 히타치제작소(4%) 등이다.

● 최병인 사장은

1980년 서울 우신고등학교 졸업

1984년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졸업

1986년 KAIST 기계공학과 대학원 졸업

1992년 MIT 기계공학과 대학원 졸업(박사)

1993년 미국 맥킨지 본사 컨설턴트

1994년 맥킨지 코리아 컨설턴트

1998년 앤더슨 컨설팅(현재 액센츄어) 전략부문 이사

2000년 효성데이타시스템(주) 대표

2002년 노틸러스효성(주) 대표

최병인 사장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Godfather)를 좋아한다. 냉혹한 마피아 세계에서 패밀리의 생존을 위해 결단을 감행하는 돈 콜레오네와 아들 마이클의 2대에 걸친 인생 유전은 비즈니스 세계 속에 던져진 경영인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마피아 세계를 멀리하려던 마이클이 아버지의 피격 소식을 듣고 잔인한 복수에 나서는 장면, 그리고 이 일을 발단으로 갱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습은 잔혹한 암흑가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영상 기법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세상의 또 다른 단면을 비춘다. 최 사장은 특히 마이클이 뉴욕의 치열한 권력다툼을 피해 달아나 이탈리아 시칠리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살인과 음모, 권력의 그늘이 드리워진 뉴욕의 풍광과 달리, 순박한 시골 여인과 결혼해 유유자적의 단꿈이 펼쳐지는 시칠리 장면은 지중해의 밝은 햇살을 머금어 화사한 주광색으로 빛난다.

코폴라 감독은 두 가지 풍경의 대비를 통해 선과 악, 욕망과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 주려 했다고 최 사장은 해석한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욕심과 안락하고 평온한 고향에 돌아가 쉬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면이 모두 드러난다는 것이다. 최 사장은 대부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명음반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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