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소년이 열 살 되던 해 겨울의 일이었다."서울 딸에게 알려야지."
어른들이 말했고, 소년은 천리 밖 서울에 있는 고모에게 그것을 어떻게 알리나 궁금했다. 친척 아저씨가 시내 우체국에 나가 전보를 쳤다. 연락을 받은 고모는 다음날 저녁 시골집에 도착했다.
어른들은 세상이 참 빨라졌다고 말했다. 소년에게도 전보라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다음 그때의 소년이 자라서 소설가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 '전보'라는 말을 단 한번도 쓰지 못했다. 억지로라도 전보라는 말을 쓰고 싶어서 썼다가 지운 문장이 '그는 군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였다. 그렇게 말고는 전보를 보낼 일도 받을 일도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별이었던 그것은 이제 원래의 사명이었던 '다급함'과 '빠름'을 버리고 자신이 챙겨야 할 사람들의 이런저런 기념식에 일일이 참가할 수 없는 바쁘고도 높은 사람들이 자기 몸 대신 그 자리를 빛내게 하는, 의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방식의 축전으로만 쓰일 뿐이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