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가 방망이를 던지고 내달리려는 순간이다. 넘어갈까. 넘어갈까. 뒤로 새까맣게 보이는 관중의 시선이 높은 곳을 향한 것으로 봤을 때 공은 지금 공중에 높이 떠 있다. 펜스를 넘을지 파울플라이아웃 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사람들은 누구나 역전 만루홈런을 꿈꾸면 산다. 하지만 과감히 방망이를 휘두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다. 조금만 세상과 부딪히다 보면 주저앉기 마련이고 심지어 매번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이에게 "괜히 어깨에 힘주면 죽도 밥도 안 되니 가끔 안타나 하나씩 치면서 살지?"라고 조언한다.
요즘 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앨범표지는 의미심장하다. 신해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고스트네이션'(MBC FM4U) 등을 통해 전파를 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꽤나 인기인 모양이다. 그를 찾기 위해 홈페이지로 찾아 들었다. 작사, 작곡, 편곡, 레코딩, 믹스 등을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해낸 주인공 달빛요정은 "어설픈 재능과 호기심을 시험하는 자기만족을 위한 시도였다"고 밝혔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1,000장 한정 판매한 음반은 벌써 팔려 나가 추가로 300장을 더 찍어냈다.
그의 노래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소주 몇 잔에 금세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는 초등학교 동창과 마주하듯 그 솔직함이 좋다. 달빛요정의 노래 '스끼다시 내 인생'. '졸업하고 처음 나간 동창회/ 똑똑하던 반장놈은 서울대를 나온 오입쟁이가 되었고/ 예쁘던 내 짝꿍은 돈에 팔려 대머리아저씨랑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신문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 스끼다시 내 인생'.
그도 우리도 '스끼다시' 인생을 살고 있을 지 모른다. 메인 요리의 들러리나 서는. 하지만 달빛 요정도 우리도 더 늙기 전에 힘찬 스윙 한 번 해 보자구요. "끝없이 패전처리를 반복했다"던 달빛요정이나 우리의 인생에도 언젠가는 역전만루홈런이, 그것도 안 되면 "언젠가는 빗맞은 텍사스안타 한번쯤은 찾아올 것이라" 믿어보며.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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