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를 모시고 술집으로 간다? 바흐 양반, 어떤 표정을 지을지.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하는 첼로 연주자 매트 하이모비츠가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서 저지른 짓이다. 그것도 첼리스트들이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갖고. 콘서트홀을 탈출한 하이모비츠의 바흐는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는데…
바흐가 술집으로 간들 무슨 대수랴. 준비된 청중만 있다면 어디서 풍악을 울리든 크게 문제삼고 싶지 않다. 학교 강당이면 어떻고 동네 구민회관이면 어떤가. 음악마다 그에 가장 알맞은 연주장이 있겠지만, 클래식음악이라고 해서 꼭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란 법은 없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대뜸 떠오른 것이 20세기 초반 유럽의 카바레다.
우리나라에서 카바레는 '바람난 싸모님과 제비족의 아지트'라는 고색창연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유럽에서는 다르다. 20세기 초반 파리, 베를린 등의 카바레에는 당대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요란한 쇼를 보는 이들 극장식 술집에서 그들은 실험적 예술을 선보였다. 시대의 불안과 억압을 폭로하고 사회와 정치를 풍자했다.
1차 대전 중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는 다다이즘의 발상지다.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여기서 전위적인 예술을 논하고 온갖 소동을 일으켰다. 베를린의 카바레는 히틀러를 지독하게 조롱하는 노래를 퍼뜨려 나치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유명한 에릭 사티는 콘서트홀이나 아카데미를 거부하고 평생 파리의 카바레 음악가로 살았다. 이 별난 작곡가는 그렇게 '재야'로 떠돌면서 '바싹 마른 태아' '지긋지긋하게 고상한 왈츠' '관료적인 소나티네' 같은 괴상한 제목의 곡을 썼다.
음악과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왁자지껄하게 만들었던 이들 카바레 풍경을 새삼 들춰보는 것은, 오늘날 콘서트홀에 올라가는 공연의 상당수가 '지긋지긋하게 고상한' 데 질려서다. 맨날 하던 곡 하고 또 하고, 청중은 졸거나 말거나 무대 위의 연주자는 혼자 무아지경에 빠져 구름 위를 노닌다. 진지하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고루하고 딱딱한 그런 연주를 볼 때마다 은근히 신경질이 난다. 어디, 에릭 사티가 놀던 카바레 같은 곳 없을까. 정말 신날 텐데. 콘서트 홀에 앉아서 종종 그런 생각에 빠지는 걸 보면 나야말로 준비 안된 청중인가. 쩝.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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