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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재공연 관객모독/관객이 왕? 편견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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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재공연 관객모독/관객이 왕? 편견을 버려!

입력
200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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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지성적인 모독. 1978년 공연이후 극단 76이 80년대 주요 레퍼토리로 삼았던'관객모독'(기국서 연출)이 8년 만에 다시 막을 올렸다. 올 대학로의 가장 큰 프로젝트인 연극열전 세 번째 작품이다. 1966년 피터 한트케가 처음 내놓은 '관객모독'은 전통적인 연극 형식을 무너뜨리며 연극사에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물과 침과 욕설을 거침없이 관객에게 퍼붓는 발칙함과 도발적인 질문 때문이다.말장난 4중주

기주봉 정재진 주진모 고수민 네 명은 정확한 대사전달과 무대 장악력으로 극을 끌었다. 네 배우의 의미 없는 말장난으로 시작해 관객을 향한 지독한 야유와 욕설로 끝나는 이 작품은 줄거리도 등장인물의 성격도 없다.

연출가 기국서는 연극의 주인공으로 말(語)을 내세웠다. 네 배우는 때로는 아귀가 잘 들어맞는 4중창을 들려줬고, 때로는 어긋난 불협화음을 들려줬다. 4중창이나 불협화음은 비유만은 아니다. 네 배우는 말을 하는 방법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을 줄 알았다. 네 명이 두서없이 내뱉는 욕설 하나에도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계산된 어긋남이야말로 이 연극의 열쇠이다.

타령조로 하기, 랩처럼 하기, 엉뚱한 데를 끊어서 말하기, 후렴구 복창하기, 6개 국어로 대사 하기, 그 대사를 수화로 번역하기 등 말의 향연은 놀랍다. 원작을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원작의 정신을 고스란히 살려낸다.

돈 내고 모욕당하기

조금 길다 싶은 암전. 네 배우가 들어와 황당한 말을 관객에게 던진다. "여러분은 뭔가를 기대했겠죠. 그러나 여러분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여러분의 호기심은 채워지지 않을 겁니다." 사건이나 줄거리가 있으리란 기대를 무너뜨린다. 엉뚱하게도 관객을 추켜세우는가 하면("여러분 자신이 배우"), 관람태도를 문제 삼는다. "극장에 가면 말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는 여러분의 선입견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관객이 어리둥절해 하자 '못 알아듣는다'며 그만 하겠다고 일어서고, 아무 관객이나 잡아서 무대로 끌어낸 뒤 '우리를 황홀하게 하지도 못하지 않느냐'며 울먹거릴 때부터 관객은 바싹 긴장한다. 무슨 날벼락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머리를 치기 때문이다. 관객의 관람태도를 중계방송하기도 하고, 색다른 마임과 극중극을 넣기도 하며, 무대 감독이 불쑥 나와 배우를 꾸짖기도 한다.

정점은 마지막 욕설 대목. 관객이 '도대체 연극이 이래도 되는 걸까'를 속으로 되묻는 순간, 배우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개XX' '위대하길 원하는 이 쓸개빠진 놈들'이라며 욕설을 폭포수처럼 퍼붓는다. 관객은 돈을 내고 모욕을 받는 괴상한 체험을 맛본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난장판은 시작하는가 싶더니 끝나버렸다. 76단이 '관객모독'을 무대에 즐겨 올리던 시대는 연극이 문화의 정점에 있던 시기다. 배우가 욕설과 침과 물벼락을 던지면 관객은 유리창과 조명기를 깨뜨리며 난장판을 벌였다. 불행한 군사독재 시대의 탈출구였다. 그러나 오늘의 반(反)연극 '관객모독'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모독을 즐기려는 찰나 스스로 물러난다. 모독이 세련되고 얌전하다.

그러나 관객은 더 격렬하고 뜨거운 '관객모독'과 난장을 기다릴지 모른다. 오늘도 여전히 답답한 세상이고 그 탈출구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4월11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2―0010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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