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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변동림, 김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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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변동림, 김향안

입력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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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시절의 짧은 감상 4개월.' 김향안씨가 1985년 잡지에 실은 회상기다. 오래 된 기억이지만 그의 글은 우리 문단의 가장 이채로운 시인 이상(李箱·1911∼37)에 대해 매우 소중한 증언을 담고 있었다. 이상이 제비다방을 경영하며 금홍과의 동거가 파경으로 치달을 무렵, 그는 이 시인을 만났다. 이상의 단짝친구인 화가 구본웅 서모의 이복동생이었고, 당시 이화여전 영문과를 중퇴한 문학소녀였다. 1936년 그는 "폐병이면 어때. 좋은 사람이라면" 하면서 망설임 없이 결혼을 했다. 결혼 4개월 만에 이상은 "영어와 노어를 더 공부하겠다"고 일본으로 떠났다.■ 이상은 일본에 간 지 4개월 만에 '이상'과 '김해경(본명)'이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수상한 '불령선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두 달 후 사망했다. "우리 집에서 몹시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일본에 가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로 유해를 모셔와 묻어 드렸어요." 스물 한 살 아낙의 당차고도 애틋한 모습이었다. 그는 훗날 이상연구자들이 그를 알코올중독자나 수면제 상습복용자로 보는 견해를 단호히 부정한다. 이상이 생활력이 없었다는 견해도 다방을 운영했던 점을 들며 반박한다. '비정상적인 이상'으로 왜곡하는 몰상식한 행위라는 것이다.

■ 그의 회상에 의해 흔히 과장되기 마련인 '천재=요절'의 신화가 걷히고, 천재적이면서도 정상적인 이상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상의 맨 얼굴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그는 당시까지 침묵했던 이유를 "누가 지금처럼 이상에 대해 물어 본 적도 없었고, 나도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는 변동림으로서의 삶이었다. 김향안이란 필명으로 수필을 쓰던 그는, 이상 사후 10년 만에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1913∼74)와 재혼했다. 김향안은 "그 분에게는 아이가 셋 있어서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내게는 그런 점이 상관 없었다"고 말했다.

■ 이상과 넉 달, 수화와 30년이었다. 기이한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를 남긴 이상과 관련해서는, 풍문은 무성한데 실증적 연구는 빈약하다. 그만큼 20세기 전반 우리 문학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 수화는 동양적 감성을 서양 추상회화로 완성한 거장이다. 수화와 김향안의 문화적 업적과 일화는 다 밝혀진 것이어서 더 보탤 것도 없다. "수화 곁에 편안히 눕는 것이 소망"이었던 김향안은 최근 소망을 이루었다. 그는 지난 세기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긴 시인과 화가의 반려였고, 딜레탕트이자 자신도 우수한 수필가였다. 한 선구적 여성의 부음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게 되는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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