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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허재 자신도 모른 "은퇴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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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허재 자신도 모른 "은퇴 회견"

입력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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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다니까."8일 프로농구연맹(KBL) 휴게실에선 난데없는 고함이 터졌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던 허재(39·원주TG삼보)의 목소리였다. 허재는 도대체 뭘 몰랐다는 것일까? 잠시 후 회견장에 들어선 허재는 시종 웃는 얼굴이었다.

기자회견에서 허재는 유독 "죄송하다" "아쉽다"는 말을 많이 했다. 30년 동안 정든 코트를 떠나니 "아쉽다"는 '농구천재'의 소회는 당연하게 들렸다. 하지만 뭐가 그리 죄송스럽고, 아쉬웠는지 기자들의 질문이 수 차례 이어졌다. 그 때마다 허재는 "본의 아닌 은퇴" "얼떨떨한 기분" 등 알쏭달쏭한 대답으로 넘어갔다.

이날 오전 허재는 모처럼 서울 근교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본인도 급조된 은퇴선언을 하게 될지 몰랐다는 얘기다. 그 역시 "급히 회사에 들어가 회장님을 뵙고 급히 온 것이어서 당황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알 듯 말듯한 웃음은 그런 의미였다.

사실 허재의 갑작스러운 은퇴선언 발표가 있기 전까지 이날 최대의 이슈는 전날(7일) 벌어진 '희대의 엽기기록 주고받기' 추태였다. 직장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우지원의 한 경기 70점 대기록과 문경은의 3점슛 22개 등 '바스킷코미디쇼'를 반찬 삼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즈음 구단은 각 언론사 농구담당기자에게 허재의 은퇴 선언 기자회견을 전화 통보했다.

이미 허재가 "이번 시즌만 뛰고 은퇴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터라 놀라운 뉴스는 아니었지만 '왜 하필 이때냐'는 의문은 떨칠 수 없었다. "코미디로 전락한 농구판이 싫다"는 허재의 폭탄 발언이 있을 거란 우스개 소리도 흘러나왔고 아수라장이 된 농구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길을 희생했을 것이라는 감동적인(?)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허재의 은퇴는 계속적으로 이어질 '엽기기록 주고받기'에 대한 언론의 질타를 막기 위한 프로농구계의 꼼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상대로 각 언론은 허재의 은퇴사실을 대서특필했고 전날의 프로농구 엽기기록에 대한 기사는 묻혀 버렸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허재 본인이 그토록 바랐던 "화려하고 멋진 은퇴식"은 은퇴 선언으로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농구9단'의 아름다운 퇴진까지 국면 전환용 카드로 악용한 '정치9단' 농구계의 꼼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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