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할인점에서 행사 한다는 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요."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는 한 제과업체 고위 관계자 A씨의 하소연이다. 할인점들은 최근 물가 급등에 따라 소비자들의 주머니사정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할인행사를 끊임없이 벌이지만, 가격인하에 따른 부담을 납품업체에 모두 떠넘기고 있어 말썽이 일고 있다. 또 할인행사 자체가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기 보다는, 전단지 등에 싸게 파는 물건을 내세워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생색 내기'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할인점 할인행사 러시
신세계 이마트는 4일부터 '가격파괴, 최저가 상품전'을 열고 돼지고기, 감자 등 최근 가격이 급등한 생필품 140여 품목을 싸게 판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가 안정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이 행사는 2·3단계로 이어져 28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수산물, 일용잡화 등 200여 품목을 싸게 파는 '생필품 최저 가격전'을 10일까지 열고 이후 17일까지 다른 할인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롯데마트, 그랜드마트 등 다른 할인점들도 비슷한 할인행사를 잇따라 열 예정이다.
피 마르는 납품업체들
화려한 할인점들의 할인 선전 문구 뒤에는 납품업체들의 피 말리는 고통이 가려져 있다. A씨는 "할인점들은 가격 인하 분의 80% 이상을 납품업체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에 가격할인이라는 생색은 할인점이 다 내고, 부담은 납품업체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어떤 할인점은 할인행사 때 납품업체에게 500만∼1,000만원의 현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 B씨도 "판촉 도우미, 행사 안내표지판(POP) 등의 비용도 고스란히 납품업체가 부담한다"며 "하지만 막강한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할인점에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할인품목은 20여개에 불과
3만∼4만 가지에 달하는 할인점 물품 중에서 행사에 들어가는 물품은 100∼200가지에서 최소 20여개 품목 밖에 지나지 않아 실질적으로 할인행사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6일 할인행사가 한창 진행 중인 이마트 서울 구로점에서 만난 강정식(32·서울 구로본동)씨는 "행사를 하는 지도 몰랐다"며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현숙(34·서울 봉천동)씨도 "할인 품목 중에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는 물건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서울 금천점에 쇼핑 나온 하귀애(52·서울 독산동)씨도 "행사기간 날짜별로 할인 품목이 틀려 매일 쇼핑할 수 없는 사람에겐 할인 혜택이 거의 없다"며 "(날짜별 행사 품목이 틀린 것이)물건 많이 팔려는 상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백화점 식품담당 바이어로 일했던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어떤 김치 회사의 경우 할인점 요구에 맞추기 위해 같은 제품의 중량단위를 줄이거나, 질이 떨어지는 배추 등을 사용한다고 들었다"며 "할인점의 생색 내기용 할인행사가 제품 질 저하로 소비자의 외면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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