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을 맞아 독자 사은행사로 진행하는'한국일보 문화기행' 3월 일정이 정해졌다. 3월의 테마는'꽃'이다. 음력 2월 윤달이 들어있어서인지 올 봄은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자연기행은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전남 광양시 매화마을과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주변은 이미 손님맞을 준비를 끝냈다. 사찰기행은 아름다운 절집과 진입로, 그리고 홍매화가 매력적인 전남 순천시의 선암사를 찾아간다. 영상기행의 행선지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한류 열풍에 휩싸인 강원 춘천시의 남이섬. 날씨만 심술을 부리지 않는다면 평생 잊지 못할 봄나들이가 될 것이다.■자연기행/광양 매화마을, 하동 소설"토지"의 현장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질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다. 봄기운의 상징은 꽃이다. 3월 중순에서 4월 초까지 길지 않은 기간, 강의 양쪽 산기슭은 온통 꽃물결로 출렁인다. 연분홍 매화가 먼저 얼굴을 내민다. 이번 주말이면 가장 아름다운 꽃 자태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유명한 매화촌은 섬진강 남쪽에 있는 매화마을(광양시 다압면)이다. 백운산의 끝자락으로 청매실농원이 이 곳에 있다. 논밭이 적어 가난했던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유실수인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70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온 산이 매화나무로 뒤덮였다. 흩날리는 꽃잎에 눈이 부실 정도이다.
청매실농원은 농원이라기보다는 근사한 공원이다. 매실을 숙성시키는 굵은 항아리가 보기 좋게 도열해 있고, 매화밭 사이로 산책길을 냈다. 농원 건물 안에도 통나무 탁자를 여기저기 설치하고 매실차와 과자를 맛보게 한다. 편안한 사랑방이다. 직원들이 무척 친절하다. 매년 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작가와 화가, 문인들이 봄빛 영감을 얻기 위해 이 곳에 들른다.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은 장독대 아랫길을 지나 오르는 능선. 꽃이 만개하면 지나는 사람이 꽃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12일부터 매화축제가 시작된다. 초상화와 커리커쳐를 그리는 화가들도 농원 앞마당에 자리를 잡는다. 꽃을 배경으로 그려낸 행복한 표정들. 사진에서 못느끼는 매력이 있다.
광양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경남 하동군.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이다. 군에서 그 흔적을 많이 재건해 놓았다. 최참판댁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다.
산수유꽃이 피었다면 지리산 만복대 아래에 자리한 상위마을(구례군 산동면)이다. 산수유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요즘은 지리산 온천으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산수유 열매 전국 생산량의 60%가 이 곳에서 나온다. 아예 마을 전체가 노란 구름에 갇혀 있는 듯이 보인다. 산수유는 멀리서 보면 개나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가지와 꽃 모양이 전혀 다르다. 개나리와 달리 가지가 처지지 않았고 꽃은 수십 개의 뿔이 난 왕관을 닮았다. 산수유는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군락을 이룬다. 노란색 꽃봉오리가 물 속에서도 반짝거린다. 따스한 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사찰기행/순천 선암사
선암사(仙巖寺·전남 순천시 승주면 죽학리)는 전남 도립공원 조계산(884m)에 있는 대찰이다. 조계종 다음으로 국내에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비로암 자리에 신라말 도선국사가 큰 절을 일으켰다. 한때 60여동에 달했던 대가람은 전란과 화재를 거듭 겪으며 20여동으로 줄었지만 위엄은 여전하다. 삼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昇仙橋·제400호) 등 나라의 보물을 중심으로 깊이와 아름다움이 건재하다. 산 반대편 기슭에는 조계종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등을 대고 자리한 송광사가 화려하다면 선암사는 고적하고 은근한 멋을 내뿜는다. 절 다운 절이다.
선암사 계곡길은 아름답다. 사하촌 괴목마을에서 1.5㎞ 정도 걸으면 절에 닿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길이다. 자동차로 오르는 사람은 곧 후회한다. 가지를 뒤튼 활엽수의 숲으로 길은 나아간다. 왼편의 계곡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에 걸음을 맞춘다. 이 길은 자연이 스스로 빚은 수목원이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등등…. 이름조차 낯선 나무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늘어서 있다. 친절하게 나무마다 이름표와 소갯말을 걸어놓았다.
두 개의 돌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승선교. 보물로서의 기품이 당당하다. 자연석을 기반으로 화강암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았다. 300년 가까운 세월의 폭우와 급류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붉은 색 기둥이 돌다리와 잘 어울린다.
3월 중순이면 토종매화가 꽃잎을 연다. 고풍스러운 산사 담벼락 아래에서 다소곳하게 붉은 꽃잎을 여는 매화는 한꺼번에 아우성치듯 피는 광양의 매화와는 다른 정취를 전한다.
선암사 이후의 예정된 행선지는 낙안읍성 혹은 구례 산수유마을. 산수유꽃의 만개 여부에 따라 일정을 조정할 예정이다.
조계산에서 승용차로 약 30분 거리인 순천시 낙안면에 사적 제302호인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있다. 민속마을 중에서 최초로 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조선시대의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 장군비, 장터, 초가 등이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고 그 건물에서 아직도 100여 세대의 주민이 생활한다. 옛 주막을 닮은 마을 주변의 음식점도 운치가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영상기행/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 남이섬
남이섬은 원래는 홍수 때만 섬이 되는 육지였으나 1943년 청평댐이 완성되고 청평호가 만들어지면서 완전히 하중도(河中島)가 됐다. 조선 남이장군의 묘가 있어 섬 이름이 남이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 춘천시 남면 방하리이지만 물길과 생활권이 모두 경기 가평군으로 연결되어 있다.
둘레 약 6㎞, 면적이 약 13만평인 반달 모양의 섬이다. 개인 소유로 1960년대 초부터 섬주인이었던 민병도(전 한국은행 총재)씨가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해 1967년 관광지로 개방됐다. 지금은 아들인 민웅기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한때 골프장을 운영하기도 해 섬 전체가 푸른 숲과 넓은 잔디밭으로 덮여있다. 최인호 원작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이곳에서 촬영됐으며 '강변가요제' 등 많은 문화행사가 열렸다. 서울에서 가까워 가족나들이, 연인들의 하루 데이트, 대학생들의 MT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 무질서하고 무분별한 행락인파 때문에 그저그런 관광지로 전락했으나 이제 남이섬은 완전히 살아났다. (주)남이섬의 사장인 그래픽 디자이너 강우현씨가 늙어가는 남이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일본 중국 등 한류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다.
섬의 들머리는 잣나무 숲길이다. 400여m의 일직선으로 도열한 숲길은 새 잎을 틔울 것이다. 이 섬의 본색은 잣나무 숲길이 끝나고 십자로에 닿으면서부터 드러난다. 십자로 앞길로 길게 뻗은 길은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다. 영화 '겨울나그네'의 무대가 됐던 곳이다.
십자로 오른쪽은 메타세콰이어 숲길. 우람하게 하늘로 치솟은 메타세콰이어들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이곳은 드라마 '겨울연가'로 더욱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 연인과의 산책길에 반가운 훼방꾼들도 있다. 토끼, 타조, 청솔모 등의 동물들이다. 동물 우리가 따로 있지만 평소에는 모두 우리 밖으로 나와 뛰논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진다면 점심 식사로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할 예정이다. 강변에서, 잔디밭에서, 혹은 숲 속의 벤치에서 함께 나누는 도시락은 여운이 남는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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