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A경찰서. 관내에 유흥·향락업소가 밀집해 있어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중에서도 '물 좋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업무량이 많긴 하지만 경찰관들도 이 경찰서 근무를 선호한다. 그런 A경찰서가 지난 8일 크게 술렁였다. 유흥·향락업소, 오락실 등의 불법행위 단속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들이 모두 여경으로 교체된 것이다. 정기인사가 마무리된 시점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기습 인사'에 경찰관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A경찰서 뿐만 아니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모두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8명이 자리를 바꿨다.유흥·향락업소 단속 담당을 여경으로 바꾼 경찰서는 전국 대도시 지역 123개 경찰서와 유흥업소가 밀집한 5개 경찰서 등 총 128곳에 달했다.
말 많고, 탈 많은 일선 경찰서의 유흥·향락업소 단속 활동에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남성 보다 여성이 부정부패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착안, 유흥·향락업소 단속 업무 담당에 여경을 앉혔다. 또 유흥·향락업소 단속시 경찰관 단독으로 하지 않고, 시·군·구청 공무원과 합동으로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타분야 공무원과 함께 단속에 나섬으로써 업주와의 유착 가능성을 서로 견제·감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기습 인사' 작전은 지난 4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열린 '성매매 방지 기획단' 회의에서 보고됐다. 경찰은 "유흥업소 단속 담당자 실태를 점검해 부적격자를 인사 조치하고, 담당자를 전원 여경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힌 뒤 6일 일선 경찰서에 지침을 내려 시행토록 했다.
지난해 공직사회의 부패실태를 조사,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 결과를 보고한 부패방지위원회도 나섰다. 부방위는 8일 경찰청 등에 공문을 보내 유흥주점, 노래방, 오락실, 윤락업소 등은 경찰이나 소방서 등이 단독으로 단속하지 말고 시·군·구청과 합동단속기구를 만들어 단속하라고 권고했다. 경찰은 부방위의 방안을 추진하는 쪽으로 적극 검토중이다. 경찰과 부방위의 이 같은 조치는 최근 단속 경찰관들이 유흥업소 업주로부터 정기적이고도 변형된 방법으로 성 상납, 금품 상납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부패 고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찰관들도 적지 않다. B경찰서에서 유흥업소 단속 업무를 맡다 지구순찰대로 발령이 난 C경사는 "마치 유흥업소와 유착된 부패 경찰관으로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D경찰서 생활질서계장은 "유흥업소 단속은 밤늦게까지 이뤄지는게 다반사인데 결혼한 여직원들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