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정치인 모두 불법자금 사죄를
알림

[한국시론]정치인 모두 불법자금 사죄를

입력
2004.03.10 00:00
0 0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검찰의 중간발표가 있었다. 전체 금액이 1,000억원대에 이르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823억, 노무현 후보 캠프는 113억을 받았다고 한다.그동안 '차떼기'를 포함해 여러 발표가 있었던지라 그렇게 놀랄만한 액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다시 한번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3김 정치'를 극복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었다는 '2002 대선'이 아니었던가.

찬찬히 돌아보면 이번 검찰의 조사는 나름대로 의의를 갖는다. 논란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조사해 왔기 때문이다. 검찰권의 독립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일관되게 강조돼 온 원칙이며, 이번 조사는 바로 이 연장선 아래 이뤄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총선까지 정치인에 대한 수사를 당분간 유보하겠다는 검찰의 방침이다. 선거에 미칠 영향이 결코 작지 않겠지만 사안의 성격상 수사는 의연히 계속돼야 하는 게 온당하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고려해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최소화하겠다는 것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보자면 기업인들을 우리 정치현실의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의와 적법으로 제공한 정치자금이라면 굳이 감춰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런 관행이야말로 정경유착의 본질이며, 기업에게 또한 그 반대급부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는 엄정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중간 발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검찰수사가 한나라당 죽이기로 일관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800억이 넘는 정치자금을 수수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분의 1'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한나라당이 과연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적어도 한나라당은 그럴 권리가 없으며, 그것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정말 허탈해 하는 것은 검찰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그 사실을 일관되게 은폐하고 부정해 왔다는 점이다.

민주당도 면책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현 대통령을 후보로 해서 대선을 직접 치룬 정당이다. 대선자금 수사결과를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 정치인들 가운데 불법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수사 결과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도 주목할 대목이다. '10분 1' 담론은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이며, '10분 1이냐, 아니냐'는 본류에서 벗어난 비생산적인 논쟁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숲 전체라 할 수 있다.

'10분의 1' 담론이 불필요한 논란의 소지를 제공해 온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구시대의 '낡은 정치'와 결별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 앞으로 검찰 수사가 더 남아 있다 하더라도 청와대는 중간발표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적절히 해명해야 한다.

정치권이 정녕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정말 지쳤다는 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 국민들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수사결과에 대해 반성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공세의 소재로 삼는 것에는 더욱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정치권 전체의 정직하고도 겸허한 반성이다. 구태와 일거에 결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단호하게 결별하지 않으면 만성적인 부패정치의 깊은 수렁에서 정치권이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체 정치권은 우리사회 발전의 발목을 언제까지 이렇게 잡고 있을 것인가.

김 호 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