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센터의 'R'자만 들어도 깜짝 놀랍니다."최근 국내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할 것으로 알려진 한 외국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본사에서는 '기술지원센터' 수준으로 고려하고 있는 사항이 정보통신부를 거치면 'R&D 센터'로 둔갑하기 일쑤라는 푸념이다. 매번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다 보니 R&D 센터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해외 R&D 센터 유치를 둘러싸고 외국 정보기술(IT) 기업과 우리 정부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심각하다. 양측은 R&D 센터의 기본적인 성격 규정에서부터 시각차를 드러낸다. IBM과 인텔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R&D 센터'라는 표현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국HP의 경우 응용 제품 개발 센터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는 기존 개발팀의 확장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애질런트와 퀄컴 등은 삼성·LG같은 국내 대형고객을 위한 지원센터의 연장선임을 못 박고 있다. R&D 센터가 '연구 허브'라는 정통부의 얘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전략적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도 다를 바 없다. 정통부가 외국 R&D 센터를 '9대 IT 신성장 동력'의 추진을 위한 원군으로 인식하는 반면, 해외기업들은 한국의 앞선 유·무선 인터넷 통신 환경과 성숙한 모바일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통부의 신성장 동력 아이템과는 무관하게 해외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연구과제가 모바일 기기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치중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해외 R&D 센터 유치에 이미 300억원의 지원예산을 책정했다. 이 예산은 정통부가 KT와 SK텔레콤 등 주요 통신사업자들에게서 거둬들인 연간 2조원의 정보화촉진기금에서 나온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통부가 해외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차세대 통신 산업과 홈네트워크의 산업 표준 제정에서 미국측에 지나친 양보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해외 IT기업 출신 정부 관계자는 "철저한 시장 논리로 무장한 외국 기업에 대가 없는 기여란 바랄 수 없다"며 "정부가 철저한 사업적 득실 계산 없이 마구잡이로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아닌지 따져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R&D 센터 유치에 돈과 노력을 쏟는 만큼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 방지와 국내 기업들의 투자 확대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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