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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알로에 인생 김정문 <31> 한국戰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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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알로에 인생 김정문 <31> 한국戰에 얽힌 사연

입력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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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은 내게도 참 많은 사연을 남겼다. 나는 전쟁으로 직접 가족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과 자유당의 집권을 지켜 보며 인권과 민주주의에 확실히 눈을 뜨게 됐다.전쟁이 터졌을 때 나는 동아대 3학년이었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황을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학도호국단 선전부장이던 동아대 동기생 이영훈과 부산 방송국에 출연, "용기 충천한 국군이 대반격을 하고 있다"고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지금 38선에서 적군을 격퇴 중'이라는 정부 발표를 앵무새처럼 뇌까렸다.

당시 어머니는 국제시장에서 포목점을 했다. 넉넉한 집안으로 시집간 애희 누나의 도움이 컸다. 중심가인 신창동에 2층집도 마련했다.

전쟁이 터지고 두 달 만에 낙동강 전선만 남게 되자 부산을 향해 피난민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우리 가족은 그들을 거둬주었다. 학생만 20명이 넘었고 가마솥 밥을 지어야 했다.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부산 교도소의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전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일반 죄수들로 감방은 차고 넘쳤다. 한번은 교도소 병실을 찾았는데 수십 명의 중환자들이 그대로 죽어갔다. 의사와 간호사가 없으니 당연히 진료도 없었다. 그 많은 교회들이 부산 시내에 있었건만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충격 그 자체였다.

1952년 7월 부산 정치파동도 지켜봤다. 이승만 재선을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추진하던 자유당 정권이 '발췌 개헌안'을 억지로 통과시킨 이 사건은 반대 의원 체포 등 독재의 얼굴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평소 친분이 있던 김영선 당시 민주당 의원은 경찰의 눈을 피해 우리집에서 숨어 지내기도 했다.

다음 달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됐다. 이 일련의 사건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인민군과 싸운 사람들에게 분노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나도 이런 저런 저항을 했다. 전국의 청년 학우들을 규합, 기독학생동지회를 만들었다. 정의롭고 평등하며 기독교적 사랑이 넘치는 사회 건설을 표방했다.

정치파동 직후 부산 남성여고 강당에서 한 '약소 계급의 옹호와 변론'이란 강연은 꽤나 도발적이었다. 제목 자체가 공산주의를 연상케 하는 강연에서 나는 "민주주의만이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일로 요시찰 인물이 됐고 몇 년 동안 경찰의 미행과 추적을 당했다.

대통령 암살 계획도 짰다. 기독학생동지회 멤버 3명과 이승만 암살을 모의했다. 권총 구하기와 경무대(현 청와대) 일정 파악은 친구들이, 방아쇠를 당기는 건 내가 맡기로 했다. 곡절 끝에 계획은 무산됐지만 스물 다섯살 청년의 혈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다 해도 '살인 계획'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다. 무턱대고 대통령을 제거하겠다는 발상도 약간은 돈키호테적이었다.

유일한 남동생 정실이도 따지고 보면 전쟁과 인권 유린의 희생자였다. 나와는 세 살 터울이다. 전쟁이 나자 부산에서도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런데 유독 정실이가 다닌 경남상고만은 등교 명령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이를 따랐고 정문에는 '헌병학교'라는 간판이 붙었다. 약 2개월 뒤 중병으로 죽음 직전에 몰린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그 중에 정실이도 있었다. 배는 만삭처럼 불렀는데 얼굴과 몸은 피골이 상접했다. 결핵성 복막염이라고 했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복막염이 재발돼 52년 봄 끝내 숨지고 말았다. 스물 둘 꽃다운 나이였다. 난리통이라지만 조금만 인권이 존중됐어도 그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싸움터에서 죽어간 청춘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내 동생의 죽음만 따질 계제도 아니었다.

나는 정실이의 유골을 고향 통영의 공동묘지에 묻으며 결심했다. 다시는 정실이 같은 젊은 죽음이 없도록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그 결심은 아직 만족할 만한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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