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의 지갑 속에는 갈색 띠를 두른 자기(磁氣·마그네틱) 카드가 적어도 5∼6가지는 된다. 덕분에 배불뚝이가 된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 보면 지갑은 금세 헤지기 마련이고, 막상 쓰려고 보면 용도에 맞는 카드 찾는데 한참이요, 이것 저것 뒤적이다가 잃어버리기도 쉽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카드 한 장에 수십 가지의 기능을 통합한 똑똑한 카드, 일명 '스마트카드'가 실용화되고 있다.안전하고 편리해 똑똑한 카드
스마트카드는 왼쪽 위에 금색 사각형 전극이 상표처럼 박혀있어 쉽게 구분이 간다. 스마트카드의 쓸모는 무궁무진해서 현금, 교통, 멤버십, 신용, 직불카드, 신분증, 전자화폐, 여권, 의료, 금융거래용 개인인증카드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능을 담을 수 있다.
비결은 대량의 정보를 안전하고 쉽게 저장할 수 있는 능력. 기존 마그네틱 카드가 겨우 72자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데 반해 손톱만한 크기의 반도체 집적회로(IC) 칩을 내장한 스마트카드는 최대 6만4,000자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 스마트카드는 특히 칩 자체에 복사 방지 장치를 갖추고 있어, 카드 리더기라는 간단한 장치로 복사가 가능한 마그네틱 카드에 비해 위·변조가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신용카드와 현금카드의 복제와 위조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IC카드를 도입해 사용 중이며, 이를 계기로 카드 복제로 인한 사고가 절반 이하로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에서도 카드복제 및 개인정보 유출을 통한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스마트카드의 도입이 고려되고 있다. 카드 한 장으로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게다가 더 안전하기까지 하니 쓰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두루 편리하다는 점이 스마트 카드의 매력이다.
금융, 교통, 의료 등 광범위 활용
스마트카드를 가장 반기는 곳은 금융권이다. 신용카드업계는 이미 1997년부터 후불 교통카드 기능을 갖춘 신용카드를 처음 선보이면서 스마트카드를 시대를 맞을 준비를 갖췄다. 은행권은 올해 초부터 입출금 및 은행거래를 위한 스마트카드 시범 발급을 시작했고, 다음달부터 본격 상용화에 돌입한다. 일부 증권회사에서는 PC해킹으로 인한 거래 사고를 막기 위해 공인인증서를 스마트카드에 저장해 쓰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금융감독원도 스마트카드의 보안성에 주목하고 현금카드는 2005년 말까지, 신용카드는 2008년 말까지 보안성이 뛰어난 스마트카드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6월부터 버스, 지하철, 택시, 마을버스 서울 시내의 모든 대중교통요금을 하나의 카드로 지불하는 스마트카드형 '신(新)교통카드'를 도입키로 했다. 한국도로공사도 직접 통행료를 주고 받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용 스마트카드 시스템을 설치 중이며, 이를 신교통카드와도 연계할 예정이다. 이밖에 정보통신부와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4월부터 스마트카드 신분증을 도입했고, 부산에서는 12개 주요 의료기관이 스마트카드로 진료카드를 통합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인프라 구축과 표준화의 문제 남아
한국은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 및 휴대전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스마트카드 대중화의 최적지로 꼽힌다. 또 잦은 신용카드 사고로 인해 스마트카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잘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막대한 초기투자와 표준화 문제가 걸림돌이다. 국내에 통용되는 1억6,000만장의 각종 카드를 스마트카드로 교체하려면 약 1조1,000억원(장당 1만원꼴)의 비용이 소요된다. 또 구형 카드조회기와 은행현금지급기(ATM)의 교체·업그레이드에 4조5,000억원이 필요하다. 더욱이 지난 1∼2년새 카드사들의 경영이 나빠지면서 투자 열기가 주춤한 것도 난관이다.
다양한 기관들이 발급한 카드들이 서로 호환되도록 관련 기술을 통일·표준화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출범한 한국전자지불산업협회를 중심으로 교통카드용 스마트카드 표준이 제정되는 등 스마트카드의 표준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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