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로버츠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모나리자 스마일'(Mona Lisa Smile)을 해피엔딩 연애담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사학자와 과학자들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대해 ' 위궤양의 괴로움을 참는 표정'이라는 식의 다양한 소수론을 내놓았듯, 이 영화는 소수론 쪽에 무게를 둔, 일종의 여성 드라마다. 온화해 보이는 미소, 그것만 지어 보이면 행복한 듯 보이느냐는 그런 항의에 찬 질문을 던지는.1950년대 미국 뉴잉글랜드의 여성 명문대학 웰슬리(우리나라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출신학교로 널리 알려졌다)에 부임한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교수.
미술사 첫 강의에 들어간 그녀는 두 번 놀란다. 예습을 해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는 학생들, 그리고 교수에게서 뭔가를 배울 것을 기대하지 않는 학생들.
그녀들은 결혼 하는 것이 목표고, 학교는 기혼자들이 수업에 빠져도 꼬박꼬박 졸업을 시켜준다. 입김 센 부모들이 교수임용을 좌지우지하고, 피임 교육을 시킨 교수는 학생이 쓴 컬럼 때문에 학교를 떠난다. 웰슬리는 좋게 말해 현모양처, 솔직히 말해 '고급 마누라' 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5년 전만 같아도 책상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를 줄리아 로버츠가 이제는 강단에 서서 강의하는 교수로 나온다. 세월의 흐름이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은 그러나 훨씬 지적이고 차분해 보인다.
전작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여성으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그녀는 이번에는 열정과 지성을 간직한 매력을 보여준다.
캐서린이 싸워야 하는 것은 좋은 집안의 자존심 강한 여학생들. 보수적인 전통을 고집하는 베티(커스틴 던스트), 프리섹스주의자 지젤(메기 질렌할), 예일 로스쿨에 입학하고도 약혼반지 받기를 더 기다리는 조안(줄리아 스타일스) 등은 책을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캐서린에게는 큰 벽이다.
물감을 척척 뿌려놓은 잭슨 폴락의 그림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말고 그림만 보라"고 얘기하는 캐서린의 교육방법은 논란을 빚고, 결혼한 후 결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베티로부터 "결혼을 무시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기에 이른다.
웰슬리라는 실제 학교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파격적인 '개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죽은 시인의 사회들'처럼 끈적끈적한 우정도, 파격적인 일탈도 보여지지 않는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공부보다 살림'이라며 진학을 거부하는 조안처럼 보수적 입장에 대한 배려도 지나치다.
하지만 영화는 한계를 솔직히 시인함으로써 다른 남성주의적 학교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허울 뿐인 가정에 혐오를 느낀 베티는 겉으로 미소만 짓는 삶이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며 당시 상류층으로서는 대단한 파격인 이혼을 결행하고, 교수와 제자들 사이에는 묘한 자매애가 싹튼다. 캐서린 역시 굴욕적으로 학교에 남는 대신 유럽 여행길에 오르고, 가짜 로맨스 따위에 연연해 하지도 않는다. 콜라 같던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가 이제 그윽한 허브 티의 맛이 나기 시작했다. 영화도 딱 그 맛이다. 심심한 듯 향기가 은근한. 감독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마이크 뉴웰. 19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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