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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여 마시고 덜덜 떨며 밤샘/마비된 고속도로 "지옥의 2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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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여 마시고 덜덜 떨며 밤샘/마비된 고속도로 "지옥의 26시간"

입력
2004.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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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의 연속이었어요. 남은 건 분노뿐입니다."6일 오전까지 무려 26시간을 경부고속도로에 갇힌 채 보낸 강진구(41·부산시)씨는 "7일 밤에도 악몽을 꿨어요.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26시간이었다"며 치를 떨었다.

강씨가 25톤 트레일러에 원목을 가득 싣고 인천에서 대구로 출발한 것은 5일 오전 10시께. 인천을 출발할 때 조금씩 날리던 눈발이 차츰 굵어지면서 평소보다 운행속도는 떨어졌지만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 IC를 지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정오께부터 경부고속도로 목천 IC 일대가 정체되면서 강씨는 차 안에 갇혀 버렸다. "목천 부근에서 사고가 났다는 방송은 들었지만 폭설로 통행이 어렵다거나 진입을 금지한다는 소식은 전혀 없었어요."

그는 꼼짝없이 차 안에 갇힌 채 5일 점심부터 6일 아침까지 꼬박 세끼를 굶어야 했다. 연료가 떨어질까 봐 차량 시동도 켰다껐다를 반복했고, 휴대전화로 친구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로 상황을 전해 들으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앞차에선 30대 주부가 울며불며 보채대는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 못했고, 강씨도 눈이 무릎까지 쌓인 차 밖으로는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빈 생수통에 소변을 해결해야 했다. 강씨는 "방송에서는 헬기로 빵과 우유를 공급했다는데 난 구경도 못했다"며 "아침에서야 의경이 나눠준 빵과 우유로 겨우 끼니를 해결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북 김천에 사는 사돈 초상집에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밤을 지새운 신태호(57·서울시)씨 가족도 지옥 같은 25시간을 보냈다. 신씨 가족 4명은 5일 오전 11시 서울 가락동을 출발했지만 천안 인근에서 정체가 시작, 고립되면서 꼬박 25시간을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신씨는 "새벽녘 휴대전화 배터리까지 꺼져 초상집에 가다가 동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었다"며 "추운 차 안에서 웅크린 채 하루를 보냈더니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허리도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 가족 역시 비상식량을 구하지 못해 꼼짝없이 25시간 동안 굶어야만 했다. 신씨는 "차 안에 먹을 거라곤 껌 한 통밖에 없어 식구들끼리 밤새도록 껌만 씹어 삼켰고, 물도 없어 빈 통에 눈을 담아다 차 히터에 녹여 마셨다. 속탈이 난 것 같아 병원에 가봐야겠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배달하려던 빵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트럭 기사 등도 있어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했다. 경부고속도로 남이분기점 부근에 갇혀 있었던 김정화(38)씨는 "사람들이 워낙 굶주림에 떨고 있던 터라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며 "고속버스 기사분이 기름이 없어 시동을 못 거는 운전자들을 불러 버스 안에서 몸을 녹일 수 있게 해주는 등 따뜻한 마음 덕분에 덜 추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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