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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비정규직"은 국민 절반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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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비정규직"은 국민 절반의 문제

입력
2004.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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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분신하고서야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 문제에 마음을 할애하고 있다. 제발 이번만은 냄비처럼 끓다 마는 구태가 재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비정규직 문제는 그 가족까지 감안하면 국민 절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오죽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 과도한 정규직―비정규직 이원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에 스페인 모델을 대안으로 권유하기까지 했겠는가?

그간 우리 기업은 상식선을 넘어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악용했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을 이용해 경쟁력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개발독재 시대의 패러다임이 그대로 반복되어 온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 고취와 기술 투자를 통해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로 가자는 주장은 현실 모르는 공자님 말씀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요즘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이 일자리 나누기를 위주로 한 '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가장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 것은 기업인들 자신이다.

이런 환경에서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55%선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 시간당 임금을 비교해 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반도 안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처지는 1차 하청, 2차 하청, 3차 하청으로 내려가면서 더욱 처참해진다. 그런데도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드는 등의 자구책도 강구하기 어렵다. 그랬다가는 잘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노총은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추진하면서 일자리 만들기와 함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 완화에 최대의 역점를 두고 있다. 격차 완화를 위해 노·사·정이 모두 함께 노력할 것과 하청 단가 현실화, 저소득 근로자 소득 향상 방안 강구 등의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그리고 금년도 공동 임금·단체협약 투쟁에서 예년처럼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정착을 목표로 내걸면서 우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5%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을 지침으로 낸 바 있다.

그러나 85%라는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금 격차 완화가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는 마인드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가 파탄 나지 않으려면, 그리고 사회가 희망으로 충만하려면 격차 해소가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이런 마인드가 있으면 현실적인 지불 능력을 고려하면서 3∼5년 이내에 안정적으로 격차를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85% 지침을 내세운 것은 그런 마인드를 고취시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조합원을 위한 임금 협상을 하다 보면 비정규직은 2차적 고려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정부나 기업이 여론몰이를 하듯이 노동조합이 정규직 이기주의에 빠져 비정규직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을 위한 임금 협상만도 험난한 것이 현실이다. 많은 중소 하청기업들은 모기업이 납품 단가를 동결하거나 깎아내려 지불 능력이 쪼들리는 형편이고 그런 상황에서 임금 협상을 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이익까지를 배려하는 연대의 여유가 생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자기 책임을 가리기 위해서이지만 이제 그런 전략은 그만 써야 한다. 신뢰 있는 노사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건상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보장될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IMF 환란 때 국민 모두가 금 모으기에 동참했던 것처럼 비정규직 및 중소 영세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정 모두가 힘을 합해 나가야 할 때이다.

노 진 귀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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