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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첫 직선 여성 의대학장 울산대 박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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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첫 직선 여성 의대학장 울산대 박인숙 교수

입력
2004.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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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의 문제는 교육과 연구가 본질인데 병 고치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첫 선출직 여성 의대 학장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대학을 세계적인 의료인 양성의 요람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지난 1월 7일 울산대 의대 학장 선거에서 64.1%의 지지로 학장에 당선돼 2일 공식 취임한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박인숙(55) 교수가 첫 직선 여성 의대학장으로서의 포부를 이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임명 방식으로 여성 학장이 나온 적은 있지만 교수들의 직선에 의해 의대 학장에 오른 여성은 그가 처음이다.

박 교수는 "50줄이 넘어서면서 전정한 의사라면 환자 보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실 타래처럼 얽힌 국내 의료·의학계의 현실을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고민하다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장으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의대 학생들의 교육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학도들에 대한 인성교육 등 전인교육을 통해 병의 예방은 물론 의학계를 정화하는 쪽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예과 2년까지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특별히 배우는 것 없이 허송세월만 하지요. 특히 소양교육 등 상식교육에 무관심한 게 문제다. 의사가 병만 고치는 직업인이어야 되겠습니까? 병만 고치는 의사는 소의(小醫)이고, 사람을 고치는 의사는 중의(中醫)이며, 사회를 고치는 의사를 대의(大醫)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대의까지는 못 되더라도 중의적 소양은 길러주어야 하지요. 예과 2년 동안 문학·철학·예술 등을 공부하고 의료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한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갖춘 진정한 의사를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박 교수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매년 서울아산병원에서 두어 차례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 얻은 수익금 전액을 단심실(심장의 심실이 1개인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와 안면기형아 후원금으로 내놓고 있고, 지난 2001년에는 10년 동안 준비해 자비로 펴낸 '선천성 심장병'의 인세를 한국심장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다음 달 28일에는 선천성 기형을 가진 태아와 환자, 가족을 돕기 위한 '대한 선천성 심장기형 포럼(KBDF)'을 창립한다.

197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 베일러 의대 소아심장과에서 수학하면서 줄곧 어린이의 선천성 기형 문제에 매달려 온 그가 이들을 돕기 위해 이 포럼을 만드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학의 발달로 정교해진 각종 기형아검사가 오히려 무분별한 낙태를 양산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태어나는 신생아는 55만명 정도.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의료계는 이보다 3∼4배가 많은 150만∼200만 건의 인공유산이 자행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양수검사나 혈액검사에서 조금만 수치가 높거나 의사가 고개만 갸우뚱해도 산모들은 더 이상의 정밀검사를 거부하고 아기를 지운다"며 "선천성 심장기형은 완쾌가 가능한데도 일단 심장에 조그만 구멍 하나만 발견돼도 무조건 아이를 지우는데, 이는 살인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신생아의 90% 이상이 완쾌가 가능하며 수술이 필요한 것은 절반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최근 4년 동안 120여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기 전 심장기형으로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 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매사 거침없고 당당한 철녀(鐵女)이지만 박 교수의 가슴은 누구보다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 그가 2001년 자신의 저서 '선천성 심장병' 출판 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하며 오랫동안 흐느꼈다. "이 책을 펴내는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고국에서 공부하고 진료할 수 있게 해 준 정주영 회장과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남편, 그리고 딸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의 남편은 서울아산병원 창립 멤버였던 최종무 마취과 교수로 1995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났다.

박 교수는 "198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재직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감당했던 벼슬은 병원 소아심장분과장이 전부여서 '제대로 행정을 해낼까'하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처럼 여성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서울아산병원과 울산과 강릉아산병원을 오가며 더 많은 교수·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 최선의 해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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