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 선수로 나오는데 힘들었겠어요.""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다모'의 장성백과 이번에 맡은 역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공통점은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주먹 좀 썼을 것 같은 외모인데."
"주먹은 가위바위보 할 때밖에 안 썼는걸요."
"운동을 많이 한 것 같은데 근육 만드는 비결은?"
"그건 저만의 노하우라서 공개할 수가 없어요."
김민준의 대답은 언제나 짧다. 인터뷰용 정답을 기대했다면 당황할 정도다. 하지만 그 과묵함은 그를 가벼운 농담으로 인기를 끄는 또래 배우와 다른 진중한 배우로 각인시킨다.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주역을 맡은 김민준은 이제 스물아홉살. 그의 20대는 고향 부산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키 큰 청년에서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고 패션쇼 무대를 누비던 유명모델, 그리고 사극 '다모'(MBC)의 혁명가 장성백 역으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신인탤런트로 변화해왔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는 20대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라고 그는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스물아홉살을 맞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올 한 해, 그는 마음이 급하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이 드라마와 함께 시작하게 됐습니다. 올 해 무언가 확실하게 해 놓고 30대를 맞고 싶습니다."
그가 맡은 역 현태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사법시험를 합격하고 젊은 나이에 대기업 CEO자리에 오르는 야심가 형 현준(김석훈)과 달리 그는 어려서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리고 형만 편애하는 부모 때문에 항상 사랑에 굶주려 있다. 형과 달리 그의 인생은 일본 밀항과 이종격투기 챔피언의 스파링 파트너, 외항선 선원 등으로 험하게만 이어진다.
잘 나가는 형과 골치덩어리 동생의 인생역정을 담은 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다. '사랑과 야망'(MBC)의 이덕화나 '야망의 전설'(KBS)의 최수종에 이르기까지 반항적인 동생은 분명 매력적인 역할이다. 그래서 그의 몸에 더더욱 힘이 들어간다. 유철용 PD는 "카메라 앞에서 좀 더 유연해지라"고 요구할 정도다. 현태로 변하기 위해 김민준은 "눈빛에 감정을 담아낼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종격투 장면에서 얼마나 동작을 잘 소화하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링 위에 설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함을 눈빛에 담아 내야 한다" 생각하고 연기했다.
외모도 변했다. '웨이브 장'이라는 별명을 안겨 준 굽실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고 태국, 일본 등 로케이션 촬영으로 얼굴은 건강한 구리빛으로 변했다. 이종격투 장면을 위해 정두홍 무술감독으로부터 훈련 받은 그는 원래 무규칙 이종격투기 마니아. 평소 좋아하던 일본의 격투기 선수 후나키 마사카, 스즈키 미노르가 직접 드라마에 출연한다. 90년대 챔피언인 스즈키 미노르는 가혹하리만큼 힘든 촬영을 버텨내는 그를 보고 "강한 심장을 가졌다"고 평했다.
여리여리한 꽃미남의 홍수 가운데 선 굵은 배우의 길로 한 발 한 발 내 딛고 있는 김민준. 정작 자신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말을 아끼는 대신 그는 강렬하고 험한 현태라는 인물 속으로 자신을 내몰아 치고 있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 "폭풍 속으로"는
13일 방송을 시작하는 SBS 주말 드라마 '폭풍 속으로'는 기획단계부터 '올인 2'라는 별명을 얻었다. 화제의 드라마 '올인'(SBS) 열풍을 이끌었던 유철용 PD와 최완규 작가 콤비가 다시 만난 드라마인데다가 '올인'이 미국 현지 로케이션 촬영으로 화제가 됐듯 '폭풍 속으로' 역시 태국, 일본 등에서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PD는 "어떤 점에서 '올인'과 같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한다.
유 PD는 "기업 석세스 스토리가 중심이다. 전체적인 톤도 올인과 전혀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폭풍 속으로'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대기업의 말단 직원에서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오르는 현준(김석훈)을 통해 한 기업의 성장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현준과 술집 작부 딸인 미선(송윤아)의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가 드라마를 애절한 분위기로 이끈다. 여기에 현준과 현태(김민준)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형제가 걷는 선 굵은 인생역정이 합해진다.
'폭풍 속으로'는 이국적인 느낌의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촬영을 한 데다 현태는 이종격투기 선수로 또 현태와 사랑을 나누는 오정희(엄지원)는 타투이스트(문신 시술자)로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경북 울진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유 PD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강한 인물이다. 각자 앞에 놓인 험난한 운명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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