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눈물도 안 나와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습니다."7일 오전 폭설의 무게를 못 이겨 엿가락처럼 휘어져버린 오리 사육장의 철제 버팀목을 살피던 권근현(39·충북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씨는 "도대체 언제까지 불행이 계속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폭설로 그의 400여평짜리 오리 사육장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쑥대밭이 돼 버렸다.
"조류독감 이후에 오리 사육을 그만두려다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죠. 축사도 깨끗이 청소하고 왕겨도 새로 깔았는데…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지난해 12월 옆 마을에 조류독감이 발생하는 바람에 자식처럼 기르던 오리 8,000마리를 땅속에 묻어야 했던 그는 하릴없이 술만 마셔대다 부인(37)과 두 아이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오리 사육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폭설이 내려 사육장이 주저앉은 5일은 바로 병아리 6,000마리를 다시 입식하기로 한 날. "다시 오리를 길러 초등학교 6학년인 딸에게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조류독감 피해 이후 받은 생계보조금도 다 떨어져 가고…. 이젠 다시 설 자신이 없습니다."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 이관우(43)씨도 병아리 입식을 앞두고 날벼락을 맞았다. 닭사육장 6동(720평)이 모두 무너져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농협 융자금과 집을 담보로 빌린 사채 등 2억원이 넘는 빚더미 뿐. 담배농사를 하던 그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2년전 빚을 내 현대식 닭사육장을 짓고 닭 4만여마리를 사육, 부농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희망은 잠시였다. 조류독감으로 닭값이 폭락해 어쩔 수 없이 지난 1월 중순 큰 닭들을 한마리당 400원씩 헐값에 팔아넘겨야 했다. "원가의 반의 반도 못 건졌지만 이후 닭값이 꾸준히 올라 병아리 3만마리를 다시 입식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는데. 이번에도 하늘이 돕지를 않네요." 그는 충주시 등 당국의 늑장 대응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5일 새벽부터 하늘이 뚫린 것처럼 눈이 쏟아져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눈을 털어낼 수 없어 아침부터 면사무소와 시청에 전화를 수십번이나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고 축사 6동은 8시간을 두고 차례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리 사육장 5동(720평)이 무너진 공병문(37·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씨는 "축사를 재건축할 돈도 없고, 다시 사육을 시작할 마음도 나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음성·충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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