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보다 정치의 계절이 먼저 왔다. 이미 닿은 남녘의 화신(花信)에도 마음이 그저 심상하기만 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이려니. 얼음 녹은 땅은 지겹도록 똑 같은 스캔들과 악다구니로 진창이 될 것이고, 그 위를 나라와 민생 따위의 언어들이 아지랑이처럼 무성하게 떠돌 터이다. 한들 어쩌겠는가. 매양 속아오긴 했지만 그 토양 속에서라도 야무진 씨앗 하나쯤 트길 또 기대해볼 밖에. 기존 정치인들은 경륜(대체로 '생존능력'과 동의어로 봐도 무방한)을, 정치 초년생들은 선도(鮮度·통조림은 따면 급속히 상하기 시작한다)를 앞세워 저마다 비장한 출사표를 던지는 와중에 나경원(羅卿瑗·41·변호사)씨를 만났다. 그의 이미지는 국회진출을 염두에 둔 다른 후보군에 비해 독특하다. 분명 정치인이되 통념상의 그 바닥 사람 같지는 않고, 대중적 주목을 받았으되 성향은 별로 대중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자못 거창한 명분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가 원내에 진입한다면 새로운 정치인의 한 전형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구에 출마하지는 않으니까 그의 정치 입문기를 듣는다고 해서 크게 오해 살 일은 없으리라)나경원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에게는 재작년 대통령 선거 얘기를 다시 할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유세나 기자회견 현장을 그림자처럼 지켰던 바로 그 여성이다. 거친 정치판에서는 드물게 빼어난 용모여서 당시 어떤 언론은 '병풍'이니, 혹은 '대쪽을 녹이는 미인'이니 하는 표현도 썼다. 본인은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정치권의 '얼짱'으로 처음 대중에 알려졌음은 부인키 어렵다.
어쨌든 그는 대단한 정치적 행운아이다. 서울행정법원 판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정책특보로 정치에 입문한 게 2002년 9월. 이 후보의 패배와 함께 짧은 정치인 생활을 접고 변호사를 개업한 게 지난해 2월이다. 그러다 여름 한나라당 운영위원에 선임된 뒤 올해 1월 공천심사위원으로 정치 한복판에 다시 돌아왔다. 통틀어 채 열달이 안 되는 기간에 유력 대선후보 곁에서 극단을 오간 영욕을 지켜보았고, 총선에 깊숙이 간여하는 권한까지 맡았다. 그 뿐이랴. 일찌감치 비례대표 최상위급 순번으로 거론되고 있으니 그대로라면 남들이 평생 고생해도 얻기 힘든 성취를 단기간에 이뤄내게 되는 셈이다. 물 흐르듯 했기로는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줄곧 최우등생으로 중·고교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박사과정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학과 동기인 남편 김재호·金載昊씨도 판사다)됐다.
어디 한 구석 삶으로 뒤틀린 정서가 없는 그에게 상식과 법률로 시비를 가리는 일은 적성에 맞았다. 그런 그가 정치인이 됐을 때 많은 이들이 놀라워 했다. "법대에는 야심만만한 친구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나경원은 워낙 여성스러운 데다 출세욕 따위도 없어서 정치 할 친구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대학동창 S씨) 나씨 스스로도 정치에 대한 시각이 탐탁치 않았다. "보통 생각하듯 그런 거였어요. 사회에 기여하기 보다는 도리어 그 반대라는. 별 관심도 없어서 신문을 봐도 1면을 보고 정치면은 건너뛰어 뒷면만 읽었으니까요."
정치와의 인연은 뜻하지않게 맺어졌다. 이 후보측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더란다. "'학교와 법조계의 대선배께서 권유하니까 그냥 외면하기가 힘들었어요. 더구나 법조계에서는 대쪽 같은 원칙주의자로 존경받은 분이잖아요. 판사와 정치인은 성격상 양 극단이기도 한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살이 3∼4㎏이나 빠질 정도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 즈음 계기가 하나 있었다. (그는 이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을 좋은 환경에서 정상아들과 함께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 모 사립초등학교에 원서를 냈다. 장애 얘기에 교감의 안색이 홱 바뀌었다. "우리 학교는 장애아 안 받습니다." "얜 충분히 수업을 받을 능력이 있습니다. 왜 안된다는 거지요?" 교장의 반응은 모욕적이기까지 했다. "엄마, 꿈 깨!" (판사 신분을 밝혔더라면 반응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자식을 키워본 같은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럴 수가. 눈물이 북받쳤다. "너무 분해서 소송을 할까, 사회문제화 할까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칫 상처를 주거나, 아이를 이용해 이름을 판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장애아 부모들을 생각해서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교육부에 호소했으나 한참 뒤 "구두경고를 했다"는 무성의한 답이 돌아왔다. 관련 법조문을 찾아 근거서류 등을 만들어보내면서 판사 신분을 밝혔더니 그제야 서면 경고나마 이뤄지더라고 했다. 새삼 '아직 멀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법조문을 해석하고 시비를 가리는 외에도 달리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재판들을 진행하면서 입법취지와 동떨어진 과도한 행정적 규제, 형식적인 행정 같은 것들이 자주 눈에 거슬리기도 했어요."
법원에 사표를 내고 처음 당사에 나갔을 때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가령 회의에서도 먼저 자리를 잡는 사람이 임자더라고요. 보통은 위 연배 분에게는 일어서 양보하잖아요. 또 젊은 사람이 너무 나서면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는데 여기선 그게 적극적인 미덕으로 평가 받기도 하고…." 문화적 충격은 도처에 있었다. "악수도 그랬어요. 판사들이야 매년 전출입 때 딱 두번 악수하게 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잡아야 하니, 좀 상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일 자체도 그랬다. "판사 때는 매일 구체적인 결과물을 냈는데 그렇지도 않고….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하는 회의도 들었어요." 그러나 차츰 인식에 변화가 생기더라고 했다. "의외로 괜찮은 정치인들도 많고(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보였던 문화도 나름대로 현실적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됐어요. 누구와든 잦은 악수도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행위로 볼 수 있지요."
이 후보가 낙선한 뒤 당에서 "자리를 주겠다"고 했으나 미련없이 짐을 챙겼다. 같은 법률가지만 변호사 일은 또 달랐다. "판사는 대개 기록으로 판단하니까 깊숙한 접촉은 아무래도 힘들지요. 반면 변호사는 의뢰인의 구체적인 사정을 들어야하기 때문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고 넓어집니다." 반년쯤 지나 한창 보람을 느껴갈 즈음 또 연락이 왔다. "지금 대표가 새 운영위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당신이 최다득표로 선임됐다"고. "저 이제 정치 안 합니다" 상대의 응대가 묘했다. "'절대' 안할 게 아니면 하세요. 좋은 일입니다." 올해 1월초에는 15인 공천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치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엄청난 자리다. 그러나 그는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심사위의 내밀한 이야기는 삼갔다. 다만 심사대상자들이 너무 큰 명분들만 얘기하는 바람에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만 했다)
본인 얘기를 물었다. "제가 비례대표로 거론된다는 건 그냥 얘기에요.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게 된다면 뜬구름 같은 명분을 좇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 할 생각이라고 했다. 꼭 필요한 법들을 만들고 정비하는 일이다. (이게 국회의 기본기능이지만 대개의 정치인들은 이런 식의 '자잘한' 포부를 얘기하지는 않는다) 특히 아이 일을 통해 절감하게 된 교육문제에 관심이 크다. "솔직히 좋은 지역에 출마 권유도 받았는데 지역구 관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하는데다, 가족의 희생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면 정말 필요한 일을 할 시간이 적어지잖아요."
나씨는 확실히 여러 현실적인 장점을 두루 갖춘 사람이다. 겸손하고 맑은 품성까지. 그래서 좋은 인터뷰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기사란 게 뭔가 구구한 사연이 있거나, 또는 한 군데쯤 비틀만한 구석이 있어야 맛이 나는 법이므로. 그러나 마냥 순조로워 보이는 그의 삶 또한 오랜 노력과 성실성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일테니. (엄마들이 자주 하는 얘기를 상기해 보라.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서'라는) 행운이란 건 그래서 대개 합당한 대가인 법이다.
정상적인 가치들이 전도되거나 심지어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요즘 세상(또는 정치판)에서 과연 그가 "정치의 정의(定義)를 바르게 세워보고 싶다"는 '소박한' 뜻을 이뤄낼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사진=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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