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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대통령 탄핵 명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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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대통령 탄핵 명분 없다

입력
2004.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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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정계가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론으로 시끄럽다. 민주당은 오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한나라당도 동조할 기세다.협박으로 끝나든 행동에 옮기든 그것은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작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크고 작은 과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중도하차시킬 만큼 그 죄가 무거운가. 정당한 사유 없이 대통령 탄핵을 들먹이는 것은 노 대통령의 잘못을 능가하는 잘못이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상식과 원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너무 빨리 정치판에 함몰됐다. 민주당이 해서는 안될 일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리더십은커녕 '쓴소리'도 없었다.

지난 2일 밤 민주당이 선거구 획정 수정안을 기습 상정하여 정치개혁법안 통과를 무산시켰을 때도 조 대표의 목소리는 안 들렸다. 국민의 질타를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합의한 정치개혁법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려는 순간, 동료 의원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느닷없이 수정안을 제출한 민주당을 누가 공당으로 신뢰하겠는가.

대통령 탄핵 추진에는 조 대표가 아예 선봉에 서고 있다. 그는 "헌법을 수호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국회가 나서야 한다. 후대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머뭇거리고 주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치지도자가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비장한 각오'를 하겠다니 무슨 망발인가.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대통령을 감싸는 것은 아니다. 탄핵 정국은 노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야당들이 대통령 탄핵을 쉽게 입에 올린 것은 대통령 자신이 중도 하차할 수도 있다는 미끼를 던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든가 "재신임을 받겠다"든가 하는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자 탄핵론이 뒤를 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대통령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탄핵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는 극단론이 사회 일각에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동안 잦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대개 '말 실수'라는 식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단순한 말 실수가 아니라 그의 일관된 신념과 행태로서 거의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에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들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선관위의 지적을 탁구공 치듯 되받아쳤고, 그것이 탄핵론의 빌미가 됐다. 어떤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되받아치기'로 대응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구사하는 임기응변의 요체다. '재신임' 이니 '10분의 1'이니 하는 발언들도 언뜻 보기에 말 실수 같지만 일관된 신념이거나 전략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아직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지 않은 채 '가장 유리한 입당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 처지에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합법적인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등 총선을 겨냥한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법 이전에 대통령이 취할 바른 자세가 아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일 뿐"이라는 해명도 말이 안된다.

야당들의 탄핵론은 노 대통령의 행태에 감정적으로 말려든 측면이 있다. 탄핵을 발의하면 야당들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크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은 정도가 아니고, '비장한 각오'는 더욱더 아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오늘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비장한 각오'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툭하면 '재신임'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야당들은 툭하면 '탄핵'을 주장한다. 툭하면 삭발하고 단식하면서 저마다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니 국민이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는가.

비장한 각오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선거법 준수를 약속하고, 야당들은 탄핵 공세를 끝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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