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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의 생활사

입력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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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윤정 지음 웅진닷컴 발행·1만5,000원

곧은 줄기를 가지지 못하는 덩굴성 식물에게 나무 줄기는 더 없이 좋은 친구다. 덩굴은 곧게 뻗은 나무 줄기를 휘감아 돌면서 성장해 나간다. 다래 덩굴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번 감은 나무를 평생 버팀목 삼아 뻗어나간다. 다래 덩굴의 줄기가 처음 이용하는 것은 어린 나무의 가는 줄기다. 그 줄기가 굵어지면 다래 덩굴도 같이 성장한다. 어느 순간 둘은 새끼줄처럼 꼬이고 어느 것이 나무 줄기인지, 어느 것이 다래 덩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다래 덩굴이 더 굵어지면 나무 줄기는 압박을 받아 죽는다. 다래의 일방적인 승리로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숲에서는 이처럼 공존과 긴장, 그리고 투쟁이 동시에 일어난다. 탄생과 소멸, 시련과 성숙과 휴식이 있으니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다. 젊은 식물학자 차윤정씨가 쓴 '숲의 생활사'는 사계절을 따라가며 숲의 일상을 유려한 문장에 담은 책이다.

봄의 숲에는 생명의 기지개가 있다. 가지에 푸른 물이 오르면 나무는 빛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을 시작한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꽃가루가 쏟아진다. 애벌레가 기고 날벌레가 윙윙거린다. 그 사이 황사가 몰려온다. 봄이 막바지에 이르면 숲은 잠시 숨을 고른다. 치열한 여름을 맞기 위해서다.

나무가 부쩍 자랐다. 여름이다. 생명력은 더할 수 없이 왕성하다. 그래서일까. 생존을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폭풍우로 나무가 쓰러지면 작은 식물이 그 위에서 번식한다. 동충하초는 곤충의 몸에 균사를 뿌려 숙주의 몸을 뚫고 자라난다.

성장의 욕구가 끝나고 소멸을 준비하는 가을에는 여유가 발견된다. 숲은 겨울을 나기 위해 최소한의 소비기관만 남긴다. 그리고 오랜만에 열매와 잎을 땅에 떨어뜨린다. 인심을 쓰는 것이다. 겨울 양식 비축에 목마른 들짐승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겨울은 시련의 계절이다. 매서운 바람이 분다. 굶주림의 고통을 참지 못한 들짐승이 나무 껍질을 벗겨낸다. 나무는 이를 견디기 위해 껍질을 단단히, 두텁게 만들어 조직을 보호한다.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면 다시 희망이 봄이 찾아온다. 저자가 직접 촬영한 컬러 사진이 더해져 한 편의 숲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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