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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386, 당신들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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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386, 당신들에 달렸다

입력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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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라고 하면 보통 정치·경제적인 격변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조용한 변화'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구 구성의 변화이다. 식습관에 따라 사람의 체질이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한 끼 식사는 인생에서 사소한 사건이지만 비슷한 종류의 식사가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체질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구 구성의 변화도 마찬가지로 매일 조금씩 일어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사회의 씨줄과 날줄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사회는 커다란 체질 변화를 겪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386 세대가 빠른 속도로 한국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386 세대 등장의 의미를 찬찬히 곱씹어 볼 때가 되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별이 별 의미를 갖지 못하던 1980년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대학 생활을 한 세대가 어느 사이엔가 '사회인'이 되었을 때 세상은 그들에게 386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오늘 386이 중요한 이유는 적어도 당분간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한국의 앞날이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령 분포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걸쳐 있으나 그 현실적 외연은 좀 더 넓을 터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오정'에 '삼팔선'까지 운위될 정도로 정년이 단축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부는 이미 지도적인 위치에 도달했다고 보아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그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었다는 도덕적 우위와 그들만의 독특한 연대감까지 갖추고 있는 세대이다. 그렇다면 386 세대의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들은 비판과 해체에 능하고 변화에 익숙하다. 그들의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게 발달했던 20대 시절에 암울한 제도권은 비판받아 마땅했고 해체의 대상이었으며 실제로 그들은 그러한 변화를 일구어 냈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낮아지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세대이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적 특권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던 시절에 그들은 민중과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 낮은 곳에 임하고자 몸부림쳤던 세대이다.

반면 부가가치 창출에 취약하고 전문적 훈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수출이 온 국민의 관심사였고 공장 근로자가 '산업전사'로 불렸던 부모 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386은 스스로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데에만 익숙한 세대로 보일 수 있다. 또 걸핏하면 대학 문을 닫아걸고 휴강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에 체계적인 전문적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그들이 한국 사회의 주축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을 그들이 내리고, 후속 세대를 키우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독점이 다 그렇듯이 세대의 독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386은 과거 20대 시절에 그랬듯이 스스로가 낮아지고자 노력하면서 우리 세대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가지지 못한 경륜과 건설의 경험을 가진 앞 세대의 지혜를 빌리고, 아래 세대의 전문지식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공통의 정서와 동지의식이 있다고 해서 386끼리 모여서는 어떤 가치 있는 일도 할 수 없다. 유유상종의 결과가 열성인자의 재생산뿐이라는 점은 생물학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미 입증되어 있다.

현 시점에서 386은 강력한 도덕적 우위를 가진 세대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각성하지 않는 한 다른 어떤 세대도 386에게 각성을 강요하기 힘들다. 만약 386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세대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실패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장 덕 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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