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메트로 피플/봉천 2동 "골목 청결이 봉사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트로 피플/봉천 2동 "골목 청결이 봉사단"

입력
2004.03.06 00:00
0 0

"눈이 뭐 주인 있습니까. 누구든 치우면 그만이죠. 우리가 좀 고생하면 동네 사람 모두가 편해지잖아요."'100년 만의 3월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다는 4일 밤. 서울시는 기습적으로 내린 눈을 치우느라 공무원 5,000여명, 제설차량 1,400여대 그리고 10여만 포대의 염화칼슘을 투입했다. 그러나 시의 '초특급' 눈치우기 작전은 주요 간선도로에서만 진행됐다. 주택가 주변 도로는 말 그대로 사각지대였다. 밤새 내린 눈이 얼어붙었고 출근길 시민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다들 쉬지 않고 쓸어댔어요"

이렇듯 대부분 주택가가 난리통이었지만 5일 오전 관악구 봉천2동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평온했다. 차들은 막힘 없이 오갔고 꼬마들은 여느 때처럼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많은 눈이 내렸지만 이 동네는 '딴 세상'이다. 골목 어디서도 길 가운데 눈이 쌓여있는 흔적이 없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한 주민은 "동네에 눈 쌓이는 걸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웃었다.

봉천 2동 주민 39명으로 꾸려진 '골목 청결이 봉사단'. 이들은 4일 오후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자 빗자루와 삽을 챙겨 하나 둘씩 골목길로 나섰다. 송재희(62·여)씨는 "퇴근 길에 동네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다들 쉬지 않고 쓸어댔다"며 웃었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설과의 전쟁은 쉽지 않았다. "정말 쓸고 또 쓸어도 끝이 없었다"는 이인옥(46·여)씨는 "나중에는 퇴근한 아들, 딸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동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눈을 치우느라 자정을 넘겼다. 그리고 이날 새벽 또 다시 눈치우기에 나섰다.

어젯밤 눈 치우느라 손이 부르텄다는 이금주(63·여)씨는 "왜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출근길에 '감사하다', '수고하신다'는 동네 사람들 말에 힘이 막 생겼다"고 했다.

"젊은 사람은 없어 섭섭해요"

"봉사단 덕분에 걱정 없이 출퇴근 할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는 한 주민은 "다들 바쁘다며 자기 집 앞 눈도 치우지 않는 세상인데 이분들을 보면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구나 동사무소도 봉사단의 활약에 큰 시름을 덜었다.

봉천2동 문길전 동장은 "구나 동사무소 인력만으로는 제설 작업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동 전체로서는 정말 큰 힘이 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봉사단이 정식으로 꾸려진 것은 지난해 여름이지만 이들은 오래 전부터 매주 두 차례 모여 마을 청소를 해왔다.

박정구(50)씨는 "처음엔 무관심했지만 '우리 동네' 일이라며 봉사단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며 "다만 젊은 사람들의 참여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는 '자기 집 앞 눈 치우지 않는 거주자'에 대해 10만원의 벌금을 물게 한다는 내용의 '풍수해 등의 예방 및 대책법'을 추진하고 있다.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 '누군가 치우겠지'라고 지나치는 것이 다반사인 요즘. 봉사단장 변재길(63)씨는 "벌금 무서워 눈 치우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지 않나요"라며 다시 빗자루를 잡아들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