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와 싸워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큰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면, 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자신과 주변의 일들도 어느 정도 정리해 두어야 하는 부담까지 느끼게 마련이다.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지만, 얼마 전 나도 이런 상황을 맞았다. 서둘러 병원생활 준비를 해야 했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긴 입원을 위한 짐을 꾸렸다. 그런 나를 따라온 한 권의 책은 '마음밭에 무얼 심지?'였다.몇 컷의 그림이 어우러진 한 페이지와 몇 줄의 경구가 있는 또 다른 페이지가 한 쌍이 되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당시 나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다가올 일에 대한 불안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또 그동안 내가 지었을 많은 실수와 잘못에 대한 생각들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큰 일을 앞두고 있는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재미있는 그림과 따뜻한 글, 일침을 놓는 한 줄의 말씀과 소박한 그림 한 컷…. 딱딱하던 나의 얼굴은 어느덧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정하게 일러주고 꾸짖고 하던 이 책은 어느덧 마음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하얀 여백이 많은 책장들을 넘기면서 나는 마음밭에 평화를 심고 있었다.
"너그럽고 편할 땐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만큼 넓다가도 한 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바늘 끝 하나 꽂기보다 좁은 것, 그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책 속의 글귀처럼, 병을 모를 때는 아무렇지 않던 몸도 진단결과를 알고 나서는 갑자기 더 심하게 아파가고 있었다. 바쁜 회사생활에서 기분 좋을 때는 그 어떤 이, 그 어떤 일도 다 좋게만 보이고 뭐든 다 해줄 듯하다가도, 마음 한 자락이 바뀌어 기분 나빠지면 어떤 좋은 것도 다 싫게만 느끼던 일상을 살았었다. 그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고 힘든 수술을 준비하던 나는 이 그림과 이야기들에 나의 과거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투영하며 평안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것저것 늘어놓는 천 마디 말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한 마디가 훨씬 뛰어난 말이다." 조금도 욕심 부리지 않은 책, 욕심 없을 것 같은 작가, 그리고 그가 그려내는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맑은 이야기는 내 마음밭에 치유의 기운을 주었고 지금 나는 기쁘게 이 글을 쓴다. 언제든 이 책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먼저 달려가 환해지는 책. 나에게 이 책을 건네받은 또 다른 많은 이들은 또 그 마음에 무엇을 심고 있을지 늘 궁금하다.
/고세규·김영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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