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충청권을 강타한 기습폭설이 국가의 동맥인 고속도로를 완전 마비시켰다. 운전자들은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 위에서 한밤까지 12시간 이상을 멈춰 선 채 추위와 배고픔 속에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번 고속도로 대란은 100년만의 폭설이 주된 원인이지만 정부와 해당 기관의 미숙한 대처로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다.중앙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경부고속도로 목천―신탄진 구간, 중부고속도로 오창―남이분기점 구간이 폐쇄됐다. 이에 따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청주·목천IC 진입과 상행선 영동·옥천·청원IC 진입, 상·하행선 신탄진·대전IC 진입이 전면 통제됐으며, 중부고속도로 하행선 오창·서청주IC와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논산IC도 진입이 금지됐다.
폭설로 주요 고속도로가 차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충청권 일대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목천―옥천 70여㎞ 구간 등 곳곳에서 차량 수천여대가 차선구분도 없이 갓길까지 빽빽이 늘어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이 여파로 천안 시내와 논산선, 호남지선 등에서도 차들이 하루종일 거북운행을 했다.
오전 9시께부터 중부고속도로에 갇혀 있었다는 정모(34)씨는 "차들이 남이분기점 앞 고갯길을 넘지 못해 이렇게 서있다"며 "해질 때까지 갇혀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늘'을 원망했다. 운전자들은 도로 곳곳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길이 뚫리길 기다리거나 비좁은 승용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대부분 차량은 기름이 떨어질 것을 우려, 시동도 꺼놓은 채 추위 속에서 떨며 제설차량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갓길조차 없어진 상황이라 제설차량은커녕 119 구급차마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한밤까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고속도로 순찰대원과 천안시 성남면사무소 직원 10여명 등이 빵과 휘발유를 구입, 운전자들에게 나눠주는 등 곳곳에서 따뜻한 광경도 목격됐다.
고속도로 정체현상은 오전 7시 남이분기점 부근에서 미끄러진 차량들이 엉켜 제설차량조차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오후 2시가 돼서야 제설작업을 위한 고속도로 차단이 발표됐고, 이마저도 상황전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량들은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더구나 '오후 3시40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본선의 주행차량 차단을 해제했다'는 잘못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속도로에 차량들이 추가로 진입, 혼잡을 가중시켰다.
경부고속도로 옥산휴게소 부근에 발이 묶인 한 운전자는 "서울에서 오전 8시30분에 고속도로에 진입해 7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옥산휴게소에 있다"면서 "아무런 조치나 방송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휴게소로 걸어가 먹거리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노모가 편찮아 대전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다는 신모(34)씨는 "휴게소가 너무 멀어 배고픔을 그냥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고속도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한국도로공사에 정말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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